진짜 태양초

2007. 9. 13. 00:24삶의 잡동사니

 

 고추농사 4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매년 고추농사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 비닐멀칭을 일체 만지지 않고, 게다가 유기농한다는 농군들처럼 목초액이나 식초, 우유, 소주, 효소, 천적 등의 각종 비방과 처방도 없이 고추농사를 하고 있어서인지 그러한 엉터리자연농법에 의한 고추농사는 전혀 상업성내지 경제성이 없다는 것만을 매년 확인을 해 줄 뿐이다.

 올해는 고추를 180여 포기나 심었지만 겨우 일년 동안 먹을 고춧가루와 반찬에 넣을 풋고추와 빨간 고추를 얻는 정도의 수확을 하고 있다. 잘 하면 고춧가루 두세 근 여유 있으려나 모르겠다.

 텃밭에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일주일 이상 가지 않기도 하니 고추를 제 때에 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올해같이 장마가 길고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때에는 고추 따는 시기를 놓치고 지날 경우 고추가 터지기도 하며(큰 호고추종류가 많이 터진다), 무른 놈들과 벌레에 먹힌 놈들이 많아 빨갛게 익어간 고추의 다섯 중 하나는 밭고랑에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다.


 고추는 완전히 익은 걸 따서 말려야 최상품의 고춧가루를 얻을 수 있다.

완전히 익지 않은 고추를 수확한 경우엔 후숙과정을 거치고, 세척을 하며, 숨죽이기를 하느라고 열풍건조기를 이용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말리는 과정 등을 거쳐야 때깔 좋은 고추로서의 상품성을 지니게 된다. 

프로농군들은 좋은 시설을 갖추고 전문적으로 고추말리기를 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색깔이 좋은 마른고추를 생산해낸다.

그러나 소량의 고추를 재배하고 집의 먹을거리 정도를 얻어내는 텃밭농사를 하는 아마들은 고추가 익어가면서 매우 바쁘고 고달파진다.

매일 마다 익은 고추를 가려서 따고, 마당도 제대로 없는 데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가려가며 일일이 말리는 수고를 하여도, 고추 숨죽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관계로 알맞게 말리지 못하면 희나리나 검은 곰팡이가 생기고 곪아서 말리는 고추를 반 이상 버려야하는 신경질 나는 결과를 얻고는 속상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텃밭에서 노래 부르며 두 보따리씩 따온 고추가 마누라에겐 천덕꾸러기가 된지 오래라, 틈나는 대로 마누라의 눈치를 슬슬 보며 고추말리기를 한다.

집에 있을 때에 아침부터 맑은 하늘이면 양지바른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추를 널고 말린다.

흐리고 비가 올 염려가 있으면 거실에 잔뜩 늘어놓고 쉼 없이 선풍기를 돌려댄다.

집안에 아주 작은 좀파리들이 극성을 부리면 해충박멸기를 고추 널은 깔판 가운데에 모셔놓고 불을 밤새도록 켜놓으니 오밤중에도 딱딱 소리 내며 좀파리가 잡혀 죽는 소리에 더더욱 신경 예민한 마누라 눈치를 보게 된다.

고추가 잘 마르고 난 뒤에도 조금이라도 희나리가 있거나 검게 된 부분이 있으면 재채기 해대며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며 최종적인 손을 볼 때에는 그놈의 매운 고추냄새 때문에 마누라눈치보기는 아주 극에 달한다.

고난의 과정과 시일을 보낸 뒤에 때깔 좋은 대한민국최고급 고춧가루가 탄생되어 묵직한 한 보따리의 고춧가루가 마누라 손에 건네질 때에야 쳐졌던 목덜미와 눈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고춧가루란 놈이 텃밭농사를 즐기는 한량의 인생을 요렇게 고달프게 할 줄이야!


 취미농군이 대한민국최고의 고춧가루를 만드는 방법을 열거해본다.

* 완전한 자연농법에 의한 고추재배(화학비료, 농약, 제초제, 비닐멀칭 등이 없이 잡초와 함께 짓는 고추농사)로 완숙된 고추만을 수확하여 말린다.

*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 경우는 전기장판, 찜질기, 선풍기, 아파트 부분난방 등 집에서 가용한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여 고추가 무르고, 곰팡이 나고, 썩는 것을 방지한다.

* 비 오는 날이 계속되고 습할 경우에는 할 수없이 꼭지를 따내고 배를 갈라내고 선풍기바람을 강하게 불어주어 빨리 마르게 한다.

* 다 말리고 난 후에 먼지를 닦아내면서 희나리와 검게 된 부분이 있는 고추를 골라내고 잘라내어 색깔이 좋은 것으로만 고춧가루를 만든다.

* 고추를 빻을 때에는 고추씨앗은 여러 번 빼내어 사분의 일 정도만 넣도록 한다.

* 맑은 국이나 매운반찬용의 고춧가루는 청양고추 말린 것으로 씨앗을 완전히 빼내고 집에서 분쇄기로 갈아 만든다.

 

 


 요즈음은  농군 모두가 자기가 만든 고추가 제일 좋은 태양초라고 외쳐댄다. 정말로 웃긴다.

정말로 좋은 태양초를 생각해본다.

* 정성을 다하여 농사를 지은 질 좋은 빨간 고추를 선별하여 깨끗이 씻고

* 그늘망, 부직포 등 잡다한 것을 사용하지 않고

* 하루 종일 햇볕을 받게 하며

* 할머니가 수시로 쪼그려 앉아 온갖 정성을 다해가며 고추 하나하나를 뒤집어가며 돌보며

*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만드는 고추

그러한 고추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태양초가 아닐까한다.

옛날에 옛날 어르신들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손보며 말린 고추가 진짜태양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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