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버리기

2007. 2. 10. 19:39마음, 그리고 생각

 


< 아주 유능하고 멋지게 살며 소위 출세를 했다는 사람이 정년이 되어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서는 그 사람의 퇴직을 아쉬워하며, 공적을 기리면서 많은 퇴직금과 아주 비싼 손목시계를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 사람은 따스한 햇볕이 드는 넓은 집 정원의 벤치에서 그 비싼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영화와 멋진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행복함을 마음껏 누렸다.

그 사람은 얼마 못가서 폭삭 늙었다.

그 비싸고 귀한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은 맥없이 죽었다. >                                            


 사람들은 추억을 떠 올리며 즐거운 한 때를 뒤돌아보며 미소를 짓는다.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만일 수도 있으나, 물건을 보면서 옛날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옛날의 희로애락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누구나 부피 큰 앨범을 책꽂이에 놔두고, 책상 서랍이나 상자에 추억의 물건을 간직하며 수시로 물건을 찾아서 만지며 추억을 더듬는 버릇에 익숙해진다.

 나이가 들고 하는 일이 없으면 더욱 추억을 떠 올리는 빈도가 많아지게 되는가 보다. 바쁘게 살면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없거나와 굳이 옛날을 생각하여야 할 일이 없는 한 옛날을 까맣게 잊고 산다.

사람이 옛날을 아예 잊고 사는 건 어찌 보면 낭만을 모르고 사는 건조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 쫒기면서 바쁘거나 지금의 삶이 꽤나 좋아서 옛날의 좋았던 희열을 생각할 필요나 여유조차도 없기 때문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옛일을 회상함으로 사람들은 지금의 고생과 기쁨을 기대와 보람으로 만들며 인생의 항로에 활력과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무기력해진 자신의 처지를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놔두면서 좋았던 과거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머리 속은 옛날의 화려함과 만족으로 채워지는 잠시의 행복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 같은 인생을 바라보는 비애스런 느낌을 벗어버릴 순 없을 것이다.

 요즈음 추억을 잊어버리려고, 그리고 정리를 하려고 여러 가지 짓을 하고 있다.


 책상서랍을 좀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그러려니 서랍의 많은 물건을 없애야 한다. 사용가치가 있는 물건이 있는가하면  아예 없는 물건도 있으며, 이건 뭔지 그리고 왜 가지고 있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물건도 있다. 삼분의 이를 없앤다.

 앨범도 정리한다. 얼굴이 구분 안 되는 사진, 오래되어 누구와 찍은 것인지도 모르는 사진, 같은 시절에 여러 장 찍은 사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찍은 사진, 잘 나오지 못한 사진, 맘에 안 드는 사진 등을 모조리 뽑아내고 다시금 정리하니 팔 할은 없어진다.

 과거의 기록이 될 만한 것들도 과감하게 없앤다. 그러한 것들로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성적표, 상장, 졸업장, 직장생활 할 때의 사령장, 포상, 증서, 기념패, 명패 등을 싹쓸이를 하여 없앤다.

 과거의 사람도 정리하도록 애를 쓴다.

나이가 들면 과거에 다니던 학교의 동창을 찾는 일이 재미있고 그로 인하여 나이 들어가는 서글픔을 서로 위로하며 지내는 맛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의지하는 마음이 시야를 좁게 만드니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 서로 내왕하는 사람들이야 계속하여 유지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구태여 과거 속으로 들어가 행동반경이 좁아진 현실을 잊고 삶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것은 별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추억, 그리고 과거 버리기는 인생에서의 어리석은 짓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의 상태에서 지금, 그리고 앞을 살아감에 있어서 현재의 자신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알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한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처지를 눈물 흘리며 과거의 좋은 날을 회상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과거에 남에게 굴하지 않는 멋진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지금이 고달픈 때에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바로 현재를 인식하고 고개 숙이며 사는 처지에 익숙해져야 한다.

뒤 돌아 본들 지나간 인생이 자신을 떠 받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다시 책상서랍과 상자들을 정리해 본다.

없앨 것이 또 나온다.

지금과 내일에 충실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더욱 가치 있기를 바라면서 지난 추억을, 과거를 없애간다.

그리고 지금과 내일의 삶과 일들이 나중에 볼 때에 아름답고 멋진 추억과 과거가 되기를 바라면서 현재와 미래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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