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6. 23:52ㆍ마음, 그리고 생각
산청에서 보리깜부기님이 쏜 녹차국수를 맛있게 먹고 제천을 향한다.
제천까지 꽤나 멀어 대구에서 전부터 보고 싶던 약전골목을 구경하고자 했다.
지도만 가지고 찾아가서 혼자 보려니 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옛날의 졸병에게 전화를 했다. 일요일에 집에 있을 리가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가족과 떨어져서 바쁘고 재미난 인생을 살고 있는 봉급쟁이는 아마도 봉급생활 기간 중 제일 중요한 기간을 보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구로 진입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머뭇거리다 그대로 엑셀을 밟아댄다. 중앙고속국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미친 듯이 달려본다. 왠지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이 좀 편해진 기분이 되어 제천 텃밭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아랫집 할머니는 떠난 지 오래이다.
부추도, 쪽파도, 그대로 놔두었던 배추도 파랗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농막 뒤편 응달진 곳에 남아있는 눈에는 이름모를 산짐승이 남긴 발자국만 남아있고 모든 것이 없다.
조용하다.
아랫집 강아지도 없고,
할머니가 기르던 오골계도 없다.
낮이다.
그래도 적막이다.
동네사람 누구도 다니는 이가 없다.
괜히 텃밭을 한바퀴 돌아본다.
있었던 게 없으니 없어진 것도 없다.
오직
하나는 살아있다.
텃밭의 연못이다.
말없이 물을 뿜고 졸졸대며 흘러나간다.
퇴수구를 제외하고는 땡땡한 얼음으로 덮여있다.
살아있는 연못을 확인하니 마음이 풀린다.
농막으로 들어가 전기연결하여 냉기를 내쫒는다.
밤이 아닌데도
이리
적막한
세상이구나!
멍하니 침상에 걸터앉아 상념에 빠져본다.
어두워지는 소리...
솔메님네 농장에서 가져온 당근의 맛과 색을 가졌다는 고구마 한 개를 날로 까먹고 세 개를 냄비에 넣고 쪄본다.
냉장고의 김치는 얼음이다.
반찬이 없다.
아! 있다!
늦게 딴 풋고추를 항아리에 담아 소금, 간장, 식초를 넣어 연장창고에 모셔둔 고추절임이다.
찐 고구마 세 개와 절인 고추 세 개가 저녁식사로 훌륭하다.
모든 게 없는 데에서의 풍요로움이다.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고,
뱃속을 채운 육신의 나른함과,
텅 비고 쓸쓸한 가슴을 조금이라도 보듬고 지나가는 위안은
조그만 행복을 불러오는가보다.
.
.
다시
세상은
칠흑이다.
앞산 너머 멀리서 빛을 발하는 제천시내의 밝은 불빛도
돌밭의 쓸쓸한 적막을
깨치지
못하고 있다.
지나간 봄의 태동과 함께
땀과 즐거움이 가득 찬 노동으로
돌밭을 일궈 온
한 인간은
지금
이렇게
생명이 사라진 허무한 텃밭에 홀로 서서
외로움의 쓴 맛을 곱씹으며
차디차게
그리고
외롭게 빛나는 별들을 붙잡고 있다.
돌과 흙에도
생명과 정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아는
인간이
텃밭을 떠나고부터
따스함과 선함이 가득 찬 시선을,
고운 생명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모순을
당연한 삶인 양
혼자만의 지혜로움으로 합리화시키며
이렇게
쓸쓸히
적막의 한 가운데 서서
떨고 있다.
내일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진정
선하게 바라보고,
그 속에
섞여
하나이기를 바라며,
이렇게
간절하게 염원한다.
밤이,
적막이,
고요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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