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16. 01:11ㆍ마음, 그리고 생각
마누라와 연극 관람을 했다.
마누라는 자주 연극 관람을 하였지만, 난 태어나고 여태까지 본 연극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게다가 부부가 같이 연극을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을 즐기느라 한동안 부부가 같이 즐겨 다닌 것이 아마 15년도 더 된 것 같고, 최근에는 영화구경을 좀 같이 하는 편이지만 연극은 이 번이 최초의 부부동시 관람이다.
옛날에 연극을 보면서 배우의 과장된 몸짓과 음성, 그리고 괴상한 분장과 형편없는 무대구성 등으로 연극에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 연극관람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나 할까?
둘째 아들이 취재차 관람했던 연극이 좋다고 생각하여 관람권 두 장을 사서 보냈다. 아마도 속 깊은 그놈이 정서부족인 아비의 연극관람에 더하여 우리 부부의 동시관람을 꾀하고 부부애를 좀 더 다지라고 노린 수법인 듯하다.
어쨌든 마누라와 처음으로 연극을 보느라고 대학로를 참으로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걸었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그럴듯한 식당에서 애들같이 폼 잡으며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와 포도주를 즐기고, 약간 붉어진 얼굴로 팔십 석도 채 안되는 조그마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염쟁이 유씨. 일인 극이다. 웬일이냐?
처음부터 관객과 하나 되는 자연스런 연기와 진지하고 열정적인 배우의 노력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연극에 빠져들게 하니 말이다.
자식을 염습하는 염쟁이를 보며, 인간이 죽어 저승으로 가기 전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는 연극이지만 그러한 연극의 내용보다는 배우의 열정적인 열기와 관객과 하나 되는 노력이 죽은 시신을 만지고 닦는 과정에서 웃음을 끌어오며 빠져들게 한다.
배우의 주름, 땀, 눈물, 튀는 침방울을 바로 앞에서 대하며 소극장 공연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우리부부가 둘째 줄 좋은 자리에 앉은 덕으로 공연 중에 배우가 따라주는 소주 한 컵도 쭉 받아마셨다.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는 참으로 한심하게 살았다.
세상에 부부가 같이 즐기면서 그리고 눈과 마음을 채우면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나는 나 홀로 주관대로 내 멋대로만, 그리고 마누라의 평범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을 무시하고 나의 방식대로 각각 살았으니 말이다.
연극을 보면서 부부가 같은 느낌을 동시에 가져보고, 연극관람 전후에 모처럼의 부부다운 그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지금까지 나 자신의 정서, 가족애, 부부사랑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였음을 한심스럽게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심스러운 나와 같이 살아준 마누라가 한없이 고맙다.
마누라가 남편에게서 바라는 게 무어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같이 인생길을 가는 것이 마누라가 바라는 것이다. 근심걱정도 같이하면 고달픔도 아무 일이 아닐 것이다.
여태까지 나의 고집과 독선으로 마누라를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마누라가 얼마나 불행했었고, 오죽했으면 마누라가 오십을 넘기고서도 이혼을 하려했었겠나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밤에 마누라와 집에 오면서 앞으로 연극, 음악, 영화 등 예술적 대상에 최소한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같이 하자고, 그리고 남편은 마누라의 이야기를 어떠한 이야기이든 진지하게 들어주기로 다짐을 하였다.
부부는 남이 보기와는 다르다.
한심하게도 나는 남들이 우리부부를 행복한 부부라고 보겠지 하며 살았고, 실제로 모범가정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많이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마누라의 결혼생활은 남편인 나의 독선과 군림으로 망가졌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헤어짐을 생각하였다니 말이다. 그걸 모르고 한심하게도 난 내 기준에 의한 사고와 편견으로 마누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만이 곧고 올바르며 나만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마누라는 나를 무조건 따를 것을 윽박지르고 살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사실 무척 창피스럽다. 그러나 우리부부의 허실을 덮고 나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더욱 한심한 일이다.
우습다. 이제야 철드니 말이다.
이제야 철드는 남편을 바라보는 마누라의 씁쓸한 눈길이 느껴지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주 쉬운 걸 모르고, 알려하지도 않고 지내온 남편이 만든 마누라 가슴의 피멍을 무엇으로 없애겠는가?
죽을 때까지 남은 부부의 연을 같이하는 삶, 같이하는 이해, 같이하는 고민, 같이하는 사랑으로 풀어야 함을 오늘 깨달아본다.
이렇게, 죄송스럽지만, 뒤늦게라도 사랑이 무언지 그리고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깨달은 나를 바라보는 마누라는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마누라와 연극 한번 관람하고 고맙게도 새로운 인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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