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의 피서

2007. 7. 29. 08:41마음, 그리고 생각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이다.

뱃살 좀 빼어야 하는 친구와 나흘 일정으로 텃밭으로 향하였다.

친구는 고기가 없으면 큰일 나는가보다. 고기를 챙기자고 성화를 부린다. 돼지고기 항정살과 갈매기살로 한 근을 사서 친구의 근심을 덜어주고, 복중의 과일 수박 한통을 골랐다.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토마토 밭으로 직행이다.

 

순식간에 익은 걸로 세숫대야에 가득 채운다. 한 공기씩 배부르게 포식한다. 텃밭에서 익은 토마토는 시장물건과는 맛이 다르다. 약간 새콤하면서도 달고 향이 짙다.

 장마 때의 일주일은 텃밭 잡초들에게는 기막힌 번성의 기회이다. 다시금 고추와 고구마 밭을 덮어버렸다. 호박도 잡초에 묻히고 참외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와 낫을 들고 밭으로 들어간다. 친구는 어릴 적에 꼴을 벤 경력이 있어 잡초를 잘 벨 거야 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옥수수와 호박, 그리고 비닐하우스 입구 쪽에 만들은 터널의 관상용호박과 수세미에 무성한 풀들을 다스려갔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지도 않고 낫질을 하는데... 어이쿠! 소리가 들린다.

친구가 나의 낫질하는 속도에 질세라 기세 좋게 낫을 후리다가 내가 애지중지하며 보살펴온 대형호박 줄기 밑 부분을 싹둑 베어낸 것이다! 노랗고 크게 달려 얼마나 클지 모를 대형호박인데...우우! 미쳐!

 

 이번에는 고추이랑으로 간다.

열흘 사이에 고추의 키만큼 자란 잡초를 베어 고추아래에 피복을 시킨다.

엉터리 텃밭농사엔 비닐멀칭보다도 잡초피복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줄기차게 지켜오는 나름대로의 엉터리자연농법중의 한  가지이다.

 

서로 반대편에서 골을 달리하여 마주보며 잡초를 베어내며 가는데... 옆을 보니 아뿔사! 이번엔 고추보다 작게 자란 예쁜 어린 들깨가 몇 놈이나 나자빠져있다! 에구구! 넌 들깨도 모르냐?

들깨 모르는 어르신도 있냐?

근데 왜 들깨들을 싹둑 했냐?

고추밭에 박혀있으니 추려냈지! 뭐 잘못된 거 있냐?

아이고! 좀 쉬고 물이나 먹자.

 친구는 농사를 지어보았어도 그냥 어른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였지 농사의 기본을 모르고 더구나 유기농내지 자연농법이 뭔지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최근에는 그저 딸아이가 건강한 아들을 낳도록 대형마트의 유기농코너에서 생산이력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깨끗하고 크고 맛깔스럽고 연하고 싱싱하게 보이는 "유기농"채소류를 부부가 함께 가서 눈에 힘주고 골라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비싸게 사서 먹이는 정도의 실력이다.

 

 땀 빼고 목욕하고 시원한 텃밭의 쉼터에서 각 일병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텃밭 뒷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모기가 아예 없기에 파라솔 아래 전등을 켜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서늘한 한기를 느끼고서야 농막으로 들어가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새벽부터 고구마이랑의 풀을 베고 뽑으며 두 시간을 넘게 땀을 뺀다. 고구마 밭에는 유난히 바랭이 풀이 많아 조그만 낫으로 베고 뜯어낸 풀들을 고구마 잎 아래에 깔아 놓는다.

 

옷이 모두 젖어 비에 흠뻑 맞은 모양이 되고 나서야 쉰다.  찬물을 몇 바가지 뒤집어쓰고 젖은 옷 빨래하고 나서야 아침을 먹는다. 물론 텃밭에서 따온 싱싱한 풋고추와 들깻잎이 고추장과 아우라지니 몇 가지의 밑반찬만으로도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다.

 아침 먹고 땀 빠진 것만큼 물 먹고 수박 잘라서 먹고 침상에 벌러덩 누워 이야기를 나누니 세상 즐겁다.

친구가 녹차를 먹고 싶다기에 오랜만에 뚜껑 깨진 주전자에 작설차 듬뿍 넣어 우려내며 아홉 순배를 돌리며 이야기꽃을 더 피우고 나니 우리들 속에 있던 근심걱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 얼굴이 환해진다.

 잡초를 덜 다스린 고구마 이랑을 마저 일하자고 낫 들고 호기부리며 나아가 밭에 쭈그리고 작업을 하지만 한여름의 열기에 한 시간도 못 버티고 그늘을 찾는다. 아예 농막 옆에 흐르는 개울로 들어가 찬물을 끼얹는다. 물 속에 들어간 김에 호미로 바닥을 정리해본다.

 

돌멩이를 골라내고 모래를 편편하게 고르고 낚시의자를 모셔놓고 앉으니 텃밭의 개울이 천연에어컨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위로는 잎이 한창 크게 자란 뽕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함을 더해준다. 멍석을 깔았으니 잘라놓은 수박을 먹어야겠다.

 

옷 벗고 발 담그고 수박을 맛나게 먹으니 언제 땀 흘렸냐싶게 서늘한 냉기에 온몸이 긴장된다. 발 시려 담근 발 빼내고 다시 담궈가며 몸의 열기를 빼어가면서 소리 내어 흐르는 개울물과 놀다보니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난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서야 어슬렁거리며 아직도 반 정도 남겨둔 감자밭으로 간다. 올 감자는 별로다. 좋다고 하는 수미 씨감자를 사서 심었는데 거름기가 부족해서인지 늦게 심어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인지 감자 잎이 무성하지 못하고, 게다가 노란 털벌레가 그나마 포식을 해 버려서인지 줄기 뽑고 호미질 열심히 해 보아야 달걀만한 작은 놈 두어 개, 많아야 네 개이다. 쪄 먹어보니 맛은 좋으나 감자 속에 옹이가 막힌 놈들이 이따금 나온다. 감자 백여 포기 심었는데 남아서 남 줄 형편이 못되는 농사를 하였으니 그야말로 엉터리 농사다.

 둘이서 열나게 땀 흘려 캐낸 감자가 반 삼태기도 못되니 한심스럽다. 삐진 입을 집어넣고 물 한 공기 쭉 들이 키고는 다시 또 풍덩! 빨래해서 널어놓고 목욕하고 일찌감치 풍성한 저녁을 준비한다.

 

 텃밭에서의 땀은 시원하다. 땀에 젖은 옷이 번거롭지 않고 오히려 편하다. 김매기, 삽질하기, 낫질하기, 지게로 인분주 나르기, 수확하기 등등 아예 땀에 푹 젖은 상태로 일하기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많고 고상하게 옷매무새 만지며 남을 의식할 일도 없으니 무지 편하다.

단지 탈진되는 정도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 그 것이 바로 즐김이고 운동이 되는 것이다.

개판 농사도 수시로 욕심을 부려 과도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목장갑 벗어 던지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쉬면서 농사를 즐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텃밭에서의 적절한 노동과 그로 인한 땀은 값지다.

개판 농사의 수확이 절대로 경제적인 가치와 소득으로 연결될 수는 없으나, 일련의 과정과 즐김은 언제나 허전한 도시인의 마음을 부자 되도록 만들고 공해에 찌든 몸에서 역겹게 냄새나는 노폐물을 시원스레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텃밭을 즐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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