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8. 11:50ㆍ농사
고추밭은 늘 풀로 덮여있고,
고랑에는 텃밭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한 고추들이 널브러져있다.
병이 들어 곪거나 벌레가 먹어 쓸만하지 못한 것들은 그렇게 버려진다.
고추농사 오 년째이지만,
불량고추의 발생률을 낮추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낮추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낮추기를 거부하며 미련한 고추농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노린재 등 벌레도 처먹고,
병균들도 들러붙어 살아가고,
그 다음엔 텃밭주인이 예쁜 녀석들 어루만지며 따먹고.
즐비하게 버려진 불량품들의 잔해가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텃밭주인이 기르는 농작물들은 병충해를 스스로 견디며 자손들을 굳건하게 생산해내는 우수한 놈들이 되라고 그냥 내 버려둔다.
과학적인 면에서, 그리고 전문적인 농사의 방법을 고려할 때에는
저런 병든 잔해들을 한 데 모아 처리하고,
처음부터 저런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약을 치는 것이 옳겠지만,
미련한 텃밭농사 오년을 하고보니 나름대로 미련하고 한심한 텃밭농사철학이 생겨서인지 모든 걸 내버려둬두고 내깔기며 텃밭에서 놀고 있다.
그래도 땅심을 높이는 배려를 줄기차게 하고,
윤작과 혼작을 적절히 하여서인지
돌밭의 애들은 기특하게도 언제나 싱싱함을 잃지 않고 있다.
텃밭농사 오년을 하면서도 소출은 형편없지만,
집에서 먹을 것은 충분히 얻고, 어쩌다 친지와 이웃에 조금씩 나누기도 한다.
아마 내년쯤에는 남는 거 남에게 팔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몇 푼 되지도 않을 것이고,
따라서 생활에 하등의 보탬을 주지도 못할 것은 뻔하겠으나,
농사로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프로들의 마음을 진실로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것이기에
내년에는 지극히 적은 양이라도 팔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오년을 고수하며 지켜오고 있는
무농약, 무제초재, 무화학비료, 무비닐멀칭으로 하는 미련한 농사방법으로
텃밭을 더 늘리지 않고도
남에게 팔 수 있는 녀석들이 제대로 나올 수 있으려나?
암만 생각해보아도 힘들 것 같다.
좀 남으면
그냥 나누기나 하는 게 좋을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