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6. 00:48ㆍ농사
가을은 아마도 쪽빛일 꺼다.
그리고 그 쪽빛가을의 냄새는 틀림없이 시원하고, 상쾌하고, 가슴이 뿌듯해지는, 마음이 부자인 여유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닐까?
텃밭에서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중구난방으로 호미와 낫을 휘두르면서 땀 빼고 지나던 여름이 어느덧 저 멀리 가고 있다.
해 지고나면 바로 서늘한 바람이 산 위에서 텃밭으로 불어온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목욕도 요즘은 따듯한 물로 하게 된다.
추석을 지내고나면서부터 텃밭의 색깔도 달라지고 있다.
극성을 떨던 잡초들도 예초기에 혼나고 나서는 맥을 못 추고, 신나게 줄기를 뻗어가며 꽃대를 키워가는 들깨도 진한 향을 풍기며 그 잎의 색이 바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뒤늦게 정신없이 달리고있는 고추들
고추는 빨갛게 익어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여물어가는 땅콩들도 잎이 변색되어가는 서늘한 가을이 벌써 찾아온 것이다.
요즈음 텃밭의 작물들 위로 솟구치는 것은 바랭이 풀의 꽃대들이다.
심심하면 텃밭을 거닐며 바랭이 꽃대를 훑어낸다.
* 바랭이와 역뀌에 묻혀있는 호박고구마들
요즘 거두기를 슬슬 미루며 텃밭 거닐기를 즐기는 버릇이 생겼다.
고구마야 서리 내릴 때쯤까지 여러 번에 나누어 기분 내키는 대로 캐어내면 될 일이고, 고추는 아직도 한낮의 햇볕이 뜨거우니 서리 내리기 전까지 익는 고추를 더 건지고 나서 남는 풋고추를 잘게 썰어 통에 담아 냉동을 하면 될 것이고, 땅콩도 집에서 먹는 양을 보아가며 텃밭에서 귀가할 때마다 한두 소쿠리씩 캐어 가면 될 일이니 모든 것이 급할 게 없다.
그러니 가을 접어들어 텃밭을 하는 마음도 푸근하고 풍요롭다.
* 수세미 터널이 보잘 것 없다. 그래도 세 관은 거두었다.
김장용 배추와 무의 작황은 너무 좋고 빨라 오히려 걱정이다.
텃밭 인근의 마을사람들 같이 집의 김장도 빨리 하여야 할 것 같다.
그 곳은 보통 11월 중하순이면 김장을 마친다.
도회지야 일반적으로 12월 들어서 김장을 시작하고, 남녘에서 올라오는 배추와 무가 시장에 년말가지 쌓여있으니 주부들이 김장의 시기에 대하여 둔감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텃밭의 무는 서리가 내리고 얼면서는 속이 비게 되어 먹을 게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러니 무가 얼기 전에 김장을 하는 강원산간지역의 김장이 빠를 수밖에 없다.
텃밭의 배추모종 정식을 8월 초에 서둘러 하였고, 무 씨앗도 일찍 뿌렸으며, 삼주 간을 텃밭에 물주기를 알맞게 하였더니 배추와 무의 상태가 아주 실하다.
병충해는 텃밭주인이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내는 바라 그런지 무와 배추는 알아서 잘 자라는 듯하다.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고 있으나 갉아 먹히는 것보다 새로 나고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 걱정거리의 대상이 아예 되질 못하고 있다.
텃밭주인이 놀면서 한가로이 텃밭에서 즐기는 것도 텃밭 가꾸기의 한 부분이다.
노동과 휴식이 알맞게 어르러져야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니 그러한 원칙은 텃밭이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을 터이다.
오히려 취미로 텃밭을 가꾸는 이에게는 노동보다는 휴식의 비중이 더 커야 텃밭을 하는 즐거움이 더 커지리라.
* 수수알도 영글어가고....
* 빨간 고추잠자리는 익어가는 수수알 위에서 달콤한 오수를...
가을 냄새가 텃밭을 둘러치고 있고 텃밭주인은 텃밭의 소출에 욕심을 크게 내지 않고 호미질을 하니 텃밭에 풍만함이 넘친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가을!
참 좋은 계절이다!
가을 냄새에 젖어있는 텃밭농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