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8. 17:31ㆍ잡초,거름,멀칭,농약
텃밭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잡초들이 살고 있다.
한 가지 잡초가 큰 부분을 점령하여 한창 세력을 키우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고 다른 잡초에게 밀려나며 종적을 감추기도 하며, 느닷없이 나타난 잡초가 3년 정도 어슬렁거리다가 텃밭의 왕초로서 행세를 하기 도 한다.
물론 그러한 잡초도 왕초행세를 오래해 봐야 2~3년간이다.
다른 센 놈들의 공략을 버티질 못하고 슬그머니 도망간다.
밭의 흙에는 수도 없이 많은 잡초들의 씨앗이 호시탐탐 싹을 틔울 기회를 엿보며 지내고 있는 듯하다.
잡초들의 종족보존능력은 아주 탁월하다.
명아주나 까마중을 잡초라고 나오는 족족 자르거나 뽑아내도 어느 틈엔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밭에 떨어뜨려 후대를 이어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명아주는 크게 자랄 때는 2M를 넘기며 까마중은 가슴팍까지 오르며 자라는데, 텃밭주인이 학대하며 못살게 굴어 살기가 힘들어질 때에는 한 뼘 정도의 작은 크기로 잽싸게 자라 텃밭주인의 예초기 날이 목을 치기 전에 씨를 맺고 익혀 후손의 이어짐을 완수하는 기막힌 재주를 부린다.
여러 잡초들 중에서 텃밭주인이 좋아하는 잡초가 몇 가지 있다.
달맞이꽃, 쇠비름, 까마중, 박하 등 네 가지이다.
환삼덩굴, 도깨비풀, 바랭이 같이 억세고 골치 아픈 놈들에 비하면 농사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 것들로서 아주 순하고 예쁜 놈들이고, 어찌 보면 텃밭주인 나름대로의 생각에 약초나 화초처럼 이용가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 때 텃밭을 달맞이꽃이 점령하여 온통 노란 꽃으로 뒤덮은 때가 있었다.
텃밭을 가꾸고 매실을 보살피느라 억세고 큰 달맞이꽃을 예초기로 토벌하느라 땀 꽤나 흘렸었다.
그 흔했던 달맞이꽃이 몇 년 동안 보이질 않다가 요즘에야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노랗고 예쁜 꽃들을 보이고 있다.
쇠비름은 작년부터 밭이랑에서 많이 눈에 띠며 세력을 넓히지만 부채만큼 큰 놈을 뽑아내기가 쉬워 밭을 손 볼 때마다 쉽게 없애서인지 크게 번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손가락 길이의 짧은 크기나마 수도 없이 많게 그러나 조용히 살살 밭이랑을 덮으며 약진할 찬스를 노리고 있다.
전혀 보이지 않던 까마중이 작년이후 농막주변에 아주 많아졌다.
어릴 적에 까맣게 익은 열매를 많이 따먹고는 달기도 하지만 쓰기도 한 맛을 이상하게 느끼며 배를 문지르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본지라 향수에 젖어 한동안 까마중을 보살핀 업보로 꽤나 늘어나 농막주위에서 텃밭주인의 비위를 맞추며 도약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농막 주변에 3~4년 전부터 악착같이 번식을 하는 박하란 놈이 있다.
자주 뽑아내며 천대하던 박하를 올해부터는 그대로 놔두면서 잎을 따서 비비며 박하향을 즐기고 있다.
지금은 헛간 옆 언덕에 자리를 잡고 맘대로 군단규모의 세력을 넓힐 준비를 갖추고 있는 중이다.
올해 피는 박하꽃을 그대로 나두면 내년부터 농막은 언제나 박하향에 취해서 편히 누워있을 것이다.
달맞이꽃, 쇠비름, 까마중, 박하 등 4가지 잡초들은 요즘 들어 어떻게 보면 보살피기까지 할 정도로 대접을 달리하고 있는 중이다.
딱히 무슨 목적을 가지고 보호를 한다기보다는 텃밭의 여러 가지 잡초들 중에서 순한 잡초이기도 하고, 막연하게나마 쓸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차피 잡초가 자랄 텃밭의 구역에 발붙이고 지내는 것이니 그대로 놔두면서 같이 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