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2. 11:43ㆍ잡초,거름,멀칭,농약
텃밭이 넓다보니 밭의 여가저기 위치와 생김새와 흙의 성질이 같지 않다.
토질이 좋으면서 채소류의 재배가 쉬운 곳, 가뭄을 전혀 타지 않으면서도 물 빠짐이 좋은 곳, 돌이 많아 삽질이 곤란한 곳, 큼직한 돌로 언덕을 이룬 곳, 밭고르기 과정에서 좋은 흙을 걷어내어 맨땅으로 된 곳, 개울가의 습한 곳, 옆 산의 나무가 커서 해가 늦게 드는 곳 등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 때는 잡초도 잘 자라지 못하는 황폐한 토질을 가진 부분도 있어서 녹비작물인 자운영, 앨팰퍼, 호밀 등의 씨앗을 사서 뿌린 적도 있지만 제대로 발아되어 자란 적이 없다.
그 동안 밭을 십 수 년 지켜보니 밭의 잡초는 내 힘으로 내 맘대로 통제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원하는 잡초들이 밭을 점령하면 좋겠는데 이따금씩 도깨비풀, 환삼덩굴, 바랭이같이 억세거나 작물재배에 지장이 큰 놈들이 극성을 부린다.
밭의 큰 공간을 지배하는 잡초는 그 번식력이 대단해서 제초제를 쓰지 않는 나로서는 토벌하기 매우 어려운데, 희한하게도 그 잡초들은 말없이 종적을 감추고 다른 잡초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모양도 많이 보아왔다.
도깨비풀이 난리를 부리다가 달맞이꽃이 장관을 이루고, 그 다음에는 환삼덩굴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며 텃밭주인이 한 길 크기의 선낫을 휘두르게 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환삼덜굴 대신 개망초가 흰 물결치며 보름달이 뜬 밤을 설레게 하였고, 개망초 다음에는 억센 명아주들이 바람 부는 대로 잎을 날리며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15년을 넘게 텃밭에서 왕좌를 내놓지 않는 녀석은 역시 쑥이다.
전면적으로 밭의 한 부분을 덮을 때는 턱까지 올라와서는 텃밭주인이 예초기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도 쑥은 한 번 토벌을 하고 뿌리를 쇠스랑으로 찍어내며 밭을 만들면 밭 흙이 보슬보슬하게 자동으로 경운을 해주는 맛도 있고 향이 좋다.
지금도 쑥은 밭의 여러 곳에 자리하며 줄기차게 쑥 향을 풍기며 잘 지내고 있다.
작년에는 단골손님인 개망초가 흰 꽃물결을 이루었기에 올해에는 어느 놈이 자리를 빼앗나했는데, 올해도 개망초가 잡초의 우두머리로서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예전과 다르게 토끼풀, 밭미나리, 쇠뜨기들이 그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는 중이다.
아마 내년에는 토끼풀이 더욱 세력을 넓혀 길 것이다.
밭미나리는 영역을 넓혀 가보았자 도랑이나 큰 돌 아래 습한 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토끼풀은 텃밭주인의 예초기의 날을 그리 겁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끼풀은 녹비작물에 속하니 명아주, 도깨비풀, 환삼덩굴 등의 귀찮은 놈들하고는 좀 다르겠지 하며 은근히 보호를 해주는 축에 들어 내년에는 크로바향이 벌들을 왕창 몰고 올 것 같은 예감이다.
녹비작물이란 녹비로 쓰기 위하여 가꾸는 작물로 녹색 작물의 줄기와 잎을 그대로 논이나 밭의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가꾸는 작물이니 엄격하게 말하면 텃밭에 재배되지 않고 저절로 자라는 잡초들은 녹비작물로의 대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 녹비작물로 이용되는 토끼풀이 저절로 그 세력을 넓혀가니 마다하지 않고 어루만져볼 참이다.
토끼풀은 바닥을 기면서 땅을 덮어가니 키 크고 억센 잡초들을 몰아내어 텃밭주인의 예초기 가동을 좀 줄여주지 않을까하고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