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매실

2013. 6. 25. 11:06마음, 그리고 생각

 칠 년 전인가?

텃밭에 유실수를 심겠다고 볼펜자루 굵기의 과일나무 묘목을 잔뜩 심었었다.

그 때 뭔 욕심이 나서인지 일년생 매실나무묘목을 사십 여 주나 심었다.

여름철 장마 후엔 텃밭은 바로 잡초천국이 되니 과일나무들은 한 길이 넘는 쑥, 명아주, 도꼬마리, 달맞이꽃 들이 둘러싸서 햇빛을 가리고, 가시달린 환삼덩굴이 기승을 부리면서 과일나무를 덮고 감으면 텃밭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녀석들은 시름시름 죽어갔었다.

보다 못한 텃밭주인은 예초기를 동원하여 웽웽거리며 잡초들을 토벌하면 여지없이 과일나무 몇 녀석은 밑동아리가 싹둑 잘려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텃밭주인이 시골 맛에 취해 텃밭에 있을 땐 제법 잘 자라주어 매실, 살구, 사과, 복숭아, 자두 등 과일나무 팔십 여 주가 자태를 뽐내며 존재가치를 알리려 했었지만, 텃밭주인이 꼬박 4년을 비웠더니 텃밭은 그야말로 황폐한 잡초 밭이 되고 말았다.

 

 밭을 둘로 나눠서 쓰기에 내 텃밭 위쪽은 친구 텃밭이다

요즘은 친구가 자기 텃밭을 굳건히 지키고 다듬고 있다.

그러나 자기 텃밭 일 부분도 돌보기에 기운이 부치는 내 친구는 내 텃밭 바라볼 여유도 전혀 없을 꺼다.

일전에 내 매실은 열매가 좀 열린 놈이 있냐고 물었더니 풀에 묻히고 죽어 제대로 된 녀석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 만 들었다.

벚나무 삼십 여 주도 텃밭 경계선 쪽으로 옮긴 후에 비실비실 모두 죽어갔다나?

텃밭 돌보기를 못하는 주제에 내 텃밭상황을 물어보는 것이 한심한 일이지!

 

 엊그제 내 텃밭의 일부를 친환경농법으로 이용하겠다는 조건하에 무료로 쓰고 있는 이가 전화를 했다.

내 텃밭에서 거둔 매실 세 관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나?

애구야! 생각지도 못한 매실이 세 관 씩이나! 웬 떡이냐?

그 사람의 말로는 텃밭 한쪽 구석에 있는 매실나무 몇 그루가 올해는 좀 되었다나?

주인 없는 한심한 잡초 밭에서 그런대로 열매를 맺은 녀석이 몇 놈 있었나보다.

지난주에 아내와 매실 십오 키로 사서 담근 것이 모자랐나 했는데 아주 잘 되었다.

 

 텃밭을 사 년 동안 비우고 있으니 텃밭의 상태는 정말 한심할 수밖에 없을 꺼다.

매실 보내준 이가 가꾸는 부분은 텃밭의 사분의 일도 안 되니 집 지을 자리 주변을 빼고는 무성한 잡초 밭이 되었을 꺼다.

지금은 텃밭 가서 지내면 다시 가꾸면 되지 하며 맘을 편히 먹는다.

그리고 과일나무도 죽은 놈, 늦게 심은 놈, 다른 놈, 별스런 놈들이 자연스럽게 보이면서 울긋불긋 꽃 피우며 여러 가지 모양의 과일이 달리면 내 취향에 더 잘 맞는 텃밭이 될 꺼야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웃어보기도 한다.

텃밭을 비운 주인이 나중에 텃밭에 가면 할 일이 무지 많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텃밭에서 생겨난 매실을 보니 텃밭이 더 그리워진다.

주인 없는 텃밭의 농막, 쉼터, 개울, 연못, 돌탑 외등, 비닐하우스, 채마밭, 콩밭, 딸기밭, 땅콩밭, 고구마밭, 들깨밭, 참깨밭,,,,, 그리고 인분주 발효시설 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텃밭의 매실 때문에 맘속으로 나마 텃밭을 돌보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마음,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료전철승차권  (0) 2015.08.12
중고나라에서 디카를 사다  (0) 2013.12.06
생일  (0) 2012.11.27
수세미는 익어가는데.....  (0) 2012.09.25
텃밭장난  (0) 201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