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초겨울

2006. 11. 26. 00:21밭 만들기

 

 얼음이 몇 번 얼고 난 후의 텃밭에는 이제 시금치와 부추, 그리고 일부 남겨둔 대파와 쪽파만이 파란색이다.

이른 아침에 추워 침상에서 웅크리며 시간을 보내다 마지못하여 빈 밭에 고성능액비를 뿌리러 가다보면 세숫대야와 함지박의 물이 꽁꽁 얼어있고 농막 옆 개울의 잔잔한 수면엔 투명한 얼음이 덮여있다.

 오밤중엔 먹이 찾으러 기어 다니는 가재도 몇 마리 없고, 온 세상 떠나가라고 울어대던 개구리도 땅속으로 들어갔으며, 바쁘게 지져대던 잡다한 새들도 어디론가 이미 훌쩍 떠나버렸다. 운치 있게 연주하던 이름모를 풀벌레들도 수그러진 잡초더미나 돌 틈바귀 속으로 들어갔는지 종적이 없다.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따금 산 속에서 괴상하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는 고라니의 울음인가? 한밤중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뀌어있는 별자리를 찾는 낭만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별빛도 차가운지 목이 움츠려들고 싸늘한 바람은 텃밭에 나와 서성대는 돌밭을 농막 안으로 ?i아낸다.

 텃밭에서 지내면 잠이 안와서 잠자리를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텃밭아랫집 할머니가 어디론가 떠나가고 난 뒤에 이 번 사흘간은  새벽 두어 시가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잠이 깨어 책을 뒤적이며 눈이 피곤해지길 기다리고 벌떡 일어나 정좌하며 호흡을 가다듬어도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떠나간 할머니 때문인지, 너무나도 적막한 산 아래 텃밭의 농막의 추위 때문인지, 백수의 외로움에서 오는 병인지 잘 모르겠다.

 늦게야 잠을 이루니 늦잠을 자게 되는가보다. 새벽에 동트는 기운에 눈이 열려도 다시 자고, 여덟시가 되어서야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텃밭으로 나간다.


 더 추위지기 전까지 다듬어지지 않은 텃밭을 가꾸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힘들여 삽질과 쇠스랑질을 하며 흙을 파고, 땅을 고르며, 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여도 지칠 줄 모른다.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도 여름 같지 않아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22평짜리 비닐하우스 자리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었고,


텃밭 아래쪽엔 오십여 미터를 도랑을 내었다.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연못 둘레를 밭에서 골라낸 작은 돌로 치장을 하였고 연못 위쪽에 작은 연못을 더 만들려고 흙을 파냈다.



모두가 내년 봄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막상 봄이 되면 할일이 많아 허둥대며 나날을 보내기 십상이라 땅이 얼기 전 지금 일을 하는 것도 좋은 듯하다.

 양수기는 동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물을 끊었고, 산위 골짜기에서 끌어오는 파이프도 이미 막아 버렸다. 텃밭에서 풍족하게 물을 못 쓰게 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풍족한 물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식수는 집에서 가져가고 세수는 개울물로 한다. 물을 뜨겁게 데워 온몸에 뒤집어쓰는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땅이 얼면 텃밭에 가야할 일이 없어진다. 하릴없이 농막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낸다 하여도 추위로 그 또한 어렵게 된다.

 아마도 12월 중순 이후부터 내년 2월 말까지는 텃밭이 나의 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 숨소리를 그리워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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