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다시 살아난다

2016. 4. 29. 14:38밭 만들기

  텃밭이 묵밭이 된 것을 보니 언짢아진다.

내 텃밭아래 사는 이가 농사 좀 짓겠다기에 농약치지 않는 조건으로 두 해를 들깨를 심으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이 경운기로 농사짓기 편하게만 여기저기를 밀어놔서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놨던 텃밭의 모양은 완전히 사라졌다.

집터자리 이백 여 평을 구성하던 열댓 개의 작은 밭과 소로는 운치 없이 운동장 모양으로 멋대가리 없이 편편해지고 돌멩이들이 잔뜩 널려있다.

내가 구상하고 삽질하며 실천하던 텃밭 모양과 농사는 프로농군들이 보기에는 한심한 것이기에 아래 사는 이를 탓할 순 없다.


 고달프고 비경제적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텃밭농사는 내 스타일로 하는 것이 옳으니 다시 텃밭을 어루만지는 내가 그에 따르는 노력도 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

농사를 편하고 경제적으로 짓는다면 나처럼 낭만적(?)으로 텃밭농사를 할 수 없다.

 프로농군이나 텃밭에서 쉽게 소출을 얻으려는 이들은 대부분 밭에 흙 좀 새로 더하거나, 농기계로 갈고, 농약 좀 쓰고, 비료 적당히 쓰고, 잡초 뽑을일 없이 비닐멀칭 하면서 농사하면 된다

나처럼 텃밭을 귀찮게 복잡하게 디자인하며 ,유기농 한답시고 별스럽게 힘들여가며 땀 빼고 난 뒤에 얻은 결실을 벌레들한테 공양할 일이 없는 것이다.

좁은 컨테이너박스 농막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법 내지 자연농법으로 농사한답시고 괴팍한 방법으로 텃밭에서 노는 이들은 농사로 인한 소득엔 큰 관심이 없다. 나름대로 취미로 하는 텃밭생활에 소출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만족을 느끼면서,그리고 도 닦듯이 몇몇의 농작물의 싹틈과 결실을 바라보고 느긋하게 어루만지면서 세월을 보낸다.

 

  어쨌든 텃밭을 6년이나 돌보지 않던 한량이 다시 호미자루를 쥐고 다시금 텃밭을 찾았으니 또 다시 초보시절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이 바빠지기기만 해진다.

천삼백여 평 텃밭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지만 손 안보고 뭣이라도 맘 편하고 쉽게 이용할 곳이 한 평도 없다.

  농막은 녹슬어서 정말로 운치나 볼품이 없이 지저분한데 친구 또한 자기처럼 조립식농막으로 깔끔하게 새로 장만하라면서 타박이다. 게다가 아래 밭에 집이 하나 덩그렇게 들어서고 내 밭 아래 바로 창고를 지어놓아 내 농막에서 바라보던 시골풍경이 자취를 감추니 농막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답답하다.

  매실나무 살아 있는 녀석이 스물다섯 그루인데 제멋대로 세 길은 하늘로 뻗어 매실이 실하게 열려도 따기가 힘들다. 사과, 자두, 살구, 복숭아 등 과일나무도 돌보지 않아 꽃만 피우고 열매는 병들고 벌레 먹어 어디 달렸었는지도 모르는 형편으로 불쌍한 세월만 보냈다.

  텃밭으로 쓰던, 그리고 텃밭으로 쓸 만한 곳들은 이랑과 고랑이 뭉게지고 없어지고, 억세고 키 큰 잡초들이 온 밭에 자리를 잡아 고라니가 놀면서 둥지 틀고 멧돼지가 들쑤셔놔 정말로 묵밭이 되었다.

다섯 평 밭을 조그맣게 다시 만드는데 하루 종일 땀 빼야하는 정도이다.

  멋지게 만들어놨던 비닐하우스는 거대한 뼈다귀에 찢겨진 비닐을 걸쳐놓으니 흉물로 변해있다.

  텃밭에서 지낼 때에 매일 즐겨 찾던 연못은 온통 산딸기 덩굴과 잡풀로 덮여있어 배수구를 막아 물을 담을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연못 주변의 나무들과 연못 바닥을 정리하고, 연못둘레를 감싸고 있는 산딸기와 잡풀을 토벌하려면 닷새는 족히 진땀을 빼야할 것이다.

 

  이제 나이도 많이 먹었고, 게다가 허리디스크 수술로 중노동을 즐길 수가 없으니 예전같이 신나게 일을 하기는 힘들다.

나이와 몸 상태에 맞추어 알맞은 수준으로 몸을 움직이며 텃밭생활을 즐겨야하니 앞으로의 세월이 많이 필요할 듯하다.

아마 앞으로 3년은 지나야 6년 전의 텃밭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실로 오랜만에 텃밭에서 며칠 밤을 보냈다.

어설프고 편치 않음으로 상쾌하지 못한 날을 보내면서 일을 하니 온몸이 아프고, 손톱을 다치고, 다리를 가시에 찔려가며 고단한 날을 보냈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편하지 않는 것일진대 텃밭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땀 흘리고 고단한 날을 보내야 다음에 편하고 즐기는 날이 올 것이니 지금을 힘들어하지는 말아야겠다.

  며칠 동안 삽질하고 쇠스랑 쓰느라 허리가 뻐근했어도 오랜만에 싱싱한 흙냄새 나는 예쁜 밭을 몇 개 만들었다.

땅콩과 쌈 채소를 파종하였고, 어제 마침 단비가 흠뻑 내려 고추와 호박고구마를 두 이랑씩 심었다.

흙 만지는 즐거움에 고달픔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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