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2. 17:01ㆍ삶의 잡동사니
1.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게 아니고 여름소나기처럼 내리기도하고 한쪽이 청명하고 한쪽에만 쏟아지기도 한다.
텃밭일이라야 땅콩 수확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어 빈둥거리던 차에 옛 직장친구가 방문을 하였다.
제천에 와서 카페를 열은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봉급쟁이 은행원출신이 제천지역의 카페명소를 만들어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참 대단하다.
그 카페는 제천의림지 부근의 "아브리 에쎄르"인데,
8백여 평 넓은 마당정원을 구비한 저택을 구입하여 로스팅과 제빵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주거를 겸하여 운영하고 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고생을 하는 걸 보고, 카페로 큰돈벌이 하는 것도 아닌 데 놀면서 하는 게 이 나이에 알맞은 인생경영 아닐까라고 쓴 소리를 하였었다.
내 말에 느낌이 있었는지 아니면 거의 2년을 된통 고생해서인지 일주일에 이틀을 쉬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원두로 로스팅과 드립을 직접 해야 하는 왕고집이라 일의 강도는 이틀을 빼고는 여전할 것이다.
마침 수육용삼겹살 한 근이 있기에 양념과 된장을 풀고 푹 삶아서 두툼하게 썰어 육젓과 함께 내어놓으니 음식점에 가자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작년에 심심풀이로 담근 아로니아술을 곁들여 삼겹수육 씹는 맛에 친구가 뿅 갔다.
그래도 운전을 하여야 하니 술은 두 잔으로 끝내고.
캄캄한 텃밭에서, 추운 농막에서, TV도 없는 농막에서, 푹 담글 욕조도 없이, 홀로 지내는 게 힘들지 않냐고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캄캄하다고 귀신 나오며 귀신 나온다고 겁낼 일 없고, 추우면 전기히터 켜고, TV없으니 책보면 되고, 큰 욕조 없으니 땅콩욕조에 들어가 조심스런 샤워하고, 홀로지내는 걸 즐기러 집에서 먼 텃밭생활을 한다고 하니 약간 별종 아니냐고 또 묻는다.
그래서 그보다도 더 별종이라고 하고 미친놈에 가깝다고 하고 웃으니 그 또한 크게 웃어 오랜만에 조용한 텃밭에 웃음소리가 떠돌았다.
텃밭상시메뉴인 찌개 남은 것에다 콩나물과 표고버섯 듬뿍 얹고 청양고추청 한 숟가락 넣어 콩나물 줄기 쫄지 않게 끓여 내 놓으니 잡곡밥 한 공기씩 바로 뚝딱이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친구의 차른 보내고 들어온 농막이 써늘하다.
훈훈하게 히터 켜놓고, 설거지 대강 끝내고, 땅콩욕조에 들어가 뜨신 물로 조심스레 샤워를 하고 누으니 포근하다.
2. 비가 내리고 나서 빗물이 텃밭 흙을 촉촉이 적시니 땅콩 캐기가 식은 죽 먹기다.
작은 삼발괭이로 콕 찍고 땅콩줄기를 잡아당기면 되고 달린 땅콩을 따내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이놈의 땅콩이 왜 이러냐?
텃밭에 땅콩을 심은 게 17년 전부터 인데 올해는 땅콩농사이래 최빈작이다!
들쥐가 훔친 것도 아니며, 굼벵이가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며, 땅콩에 병색도 없었고, 무제초제무토양살충제무농약무비료무비닐멀칭으로 지금껏 땅콩농사를 한 것 중에 최악의 수확이니 참!
돌풀밭제멋대로자연농법이니 최빈작의 원인을 따지고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일은 더욱 아니다.
올 겨울쯤 귀갓길에 여주시장에 들러 크지 않고 잘생기고 껍질이 얇은 토종땅콩을 한 됫박 사서 종자를 새로 준비해야겠다.
어쨌든 먹을 만한 땅을 가려서 따낸 땅콩이 두 바구니는 되니 아이들 조금 주고 아껴 먹으면 되겠지 뭐!
3. 시월 들어 아침저녁의 기온이 뚝 떨어지고, 일기예보에 따르면 5일 후에는 아침최저기온이 3도라니 내 텃밭에는 틀림없이 서리가 내릴 것이다.
내 텃밭엔 보통 상강 2주 전쯤이면 첫서리가 내린다.
제천의 일반적인 기온보다는 추울 때는 2~3도 아래이니 서리 내리기 전에 들깨를 전부 베어 말리는 게 좋을 꺼다.
집에 갔다 와서 건조한 한낮에 막대기로 툭툭 치면 들깨알이 싹 빠져나온다.
들깨알 모으고 체로 걸러내어 먼지와 쭉정이를 걸러낸다.
선풍기와 입으로 불어내어 알곡만 고르는 일이 꽤나 귀찮고 힘들어서 에어블로워를 준비해 놨다.
올해는 들깨알 20킬로그램 쯤 얻을까했는데 게으름과 인색한 거름주기로 인해 반쯤이나 얻으려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누렇고 갈색으로 변해가는 들깻잎들과 꼬투리들이 진한 들깨향을 가을바람에 싣고 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들깨의 갈변속도가 빠르게 나타난다.
매일아침 익은 들깨들을 골라 조금씩 베어서 비닐하우스 안에 걸쳐놓은 천막에 담아놓는 중이다.
('2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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