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4. 21:19ㆍ삶의 잡동사니
텃밭에 호두나무 두 그루 있는데, 심은 지 15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자라질 않아 크기도 작고 호두도 그간 달리질 않았었다.
작년부터 호두를 좀 달더니 올해는 두 바가지가 넘도록 얻었는데도 아직도 몇 개를 더 달고 있다.
그런데 얻은 호두는 둘에 하나는 알이 형편없어 먹지 못할 수준이다.
거름도 주지 않고 공으로 맛난 호두를 얻으려는 주인의 심보에 대한 응징이 아닐까한다.
들깨 거둔 밭을 어슬렁거리다 호두나무 근처의 배수관 옆에 깨끗한 호두가 놓여있는 걸 보고 이게 왼 떡이냐 하고 돌에 부딪혀 깨보니 알도 아주 잘 들어있다.
저절로 떨어져 놓일 수가 없는 곳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배수관 속에 호두가 잔뜩 들어있는 걸 보았다.
배수관의 길이가 두 자반 쯤 되고 양쪽이 휑하니 뚫려있어 막대기 없어도 맨손으로 호두알 이십여 개를 얻을 수가 있는데......
허나, 잠시 생각을 하다 배수관 속으로 들여 미는 손을 거두고는 가을 색에 물들어가는 텃밭 둘레와 높아져서 시원하게 펼쳐진 창공을 바라본다.
빙그레 웃으며 배수관 한쪽을 원래대로 낙엽으로 살짝 가려주고는 자리를 떴다.
18년 전에 텃밭을 처음 가졌을 때는 죽은 미루나무 위에서 산 쪽으로 비행하는 멋진 날다람쥐를 수시로 보았었다.
그러나 텃밭을 정리하느라 돌 축대를 쌓고 죽은 미루나무를 없애고 나서는 날다람쥐는 더 이상 보질 못했다.
텃밭 뒤의 송학산 숲속으로 갔나 보다.
울창한 숲이 바로 뒤에 있지만 텃밭 주변에서는 다람쥐나 청솔모를 본 적이 없다.
들쥐는 아니겠고 어느 놈이 호두를 잔뜩 배수관 속에 감추었을까?
단단한 호두껍데기를 깨서 먹을 수 있는 녀석이 도대체 뭘까?
다람쥐는 밤이나 도토리를 저장해서 겨울양식으로 먹는다지만 호두를 저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여러 가지 들짐승 산짐승을 떠 올려보아도 답이 안 나온다.
배추는 고라니의 횡포로 힘든 나날을 보낸 후에 죽지 않고 살아났지만 이제야 속을 채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들이 열 개, 목숨 부지하고 나서 덩치를 키우지만 노란 속을 채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이십여 포기다.
김장 무는 작은 종자를 심었다지만 이제 겨우 총각무 크기로 자라고 있다.
벌써 개수대에 얼음이 몇 번 얼었는데 날이 풀려도 배추나 무의 자람이 신통치 못 할게 뻔하다.
마늘과 양파를 파종하고 들깨를 털고 고르는 일을 하면 할 일이 없다.
수시로 호두나무 옆의 배수관에 어느 호두도둑이 드나들거나 사는가를 관찰해 봐야겠다.
(`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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