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2. 13:10ㆍ농사
농사를 취미삼아 하지만 텃밭은 엄청 크다.
큰 곳은 흔해빠진 매실나무를 심어놓고 거름도 주지 않고 내깔겨두니 빨리 자라질 않고, 이따금 예초기를 무식하게 휘둘러대는 통에 매실나무 밑동이 잘려나가기 일수다.
매실묘목 심은 지 삼년 차에 올해 처음으로 매실 몇 개 달렸을 정도이다.
텃밭 위쪽에 작년에 고구마와 껌정참깨를 심었던 육십여 평 되는 밭이 잡초로 싸이기 시작한다. 좀 지나면 온통 초록으로 칠해질 것 같다.
바랭이에 굴복된 고구마는 한가마도 제대로 거두질 못하였고, 한 이랑에 시험 재배한 검정참깨는 의외로 성과가 좋았던 곳이다.
새벽부터 개량괭이로 이랑과 고랑에 난 풀들을 두 시간 동안을 찍어가며 초토화 시켜가니 밭모양은 나지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올 봄은 이상스레 더위가 기승을 부려 텃밭농사에도 혼돈을 주고 취미농군을 괴롭힌다.
패이고 잘린 풀과 겨우내 삭은 풀들을 고랑에다 쑤셔놓고 쇠갈퀴(레이크)로 이랑 위를 콕콕 찍어가며 자 반 넓이로 평탄작업을 하였더니 텃밭이 훤하게 보인다. 무얼 심어도 풍성하게 수확할 것 같은 기분이다.
평평하게 고른 이랑에 검정참깨를 주먹에 쥐고 살살 손가락을 움직여가며 흩어 뿌렸다. 그리고는 쇠갈퀴를 흙에 대고 왔다갔다 두 번하고는 이랑위로 발에 힘 줘가며 두 번을 밟고 지나간다.
그러한 엉터리농사꾼의 우스운 짓거리는 무슨 농사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관리기나 파종기가 없는 취미농군이 비닐멀칭도 쓰지 않고 검정참깨 좀 쉽게 얻으려고 자고 일어나 덜 깬 머리로 생각을 하고 새벽부터 몸을 움직인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씨앗을 심을 때 씨앗크기의 두세 배 되게 흙을 덮는 것이 좋다고 배웠지만 참깨 알 같은 작은 놈들을 어찌 가지런하게 흙 이불을 덮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작년에 시도한 대로 호미자루로 흙을 콕콕 찍은 다음 참깨 알을 몇 알씩 넣고 손으로 살살 흙을 덮어주려면 하루 종일 허리 꼬부리고 극기 훈련을 한 뒤에 한의원에 가서 이삼일 침 맞아야 할 일이니 그 또한 못할 짓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살 놈 살고, 죽을 놈 죽어라! 그리고 산 놈은 풀 두어 번은 호미로 매 줄 것이니 검정 참깨나 다섯 됫박쯤 주거라!”하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땀을 흘린 것이다.
일마치고 농막에 들어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켜니 온몸이 나른해진다.
비몽사몽간에 들은 일기예보는 다음날 비가 올 것이라니 마음이 흡족해진다.
올해는 검정참깨 한 말은 거두지 않을까?
깨알에서 싹도 나오지 않았는데 깨를 볶고, 입맛당기는 기름을 짜서 고소한 냄새를 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