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과 농사원칙

2009. 5. 1. 14:31농사

 텃밭농사에서 확실한 즐거움을 더 하는 방법은 모종을 직접 길러서 텃밭에 정식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종 기르기가 매우 어렵다.

비닐하우스가 있어야하고,

포트나 상토 등의 관리를 적절히 하여야 하고,

매일 상태를 봐가며 물을 주어야하니 며칠씩 비울 수 없고,

직접 모종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각종 채소들의 모종을 사려면 꽤나 비싸다. 더욱이 텃밭농사 조금 하는 이들이 많아야 대여섯 포기 살 때에는 더 비싸진다.

그러나 취미농군의 입장에서 보면 모종이 비싸보았자 직접 모종을 만드는 것보다는 엄청 싸다고 볼 수도 있다.

씨앗뿌리는 시기를 놓친 아마가 간단히 텃밭 가꾸기를 하는 방법은 모종을 구해 심는 것이다.

시장에 가보면 아주 다양한 모종을 볼 수 있다.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수박, 참외, 상추 등 각종 쌈 채소, 부추, 대파, 양파, 고구마, 땅콩, 야콘, 배추, 곰취, 당귀, 옥수수, 들깨 등 텃밭을 가꾸는 이들이 만지는 작물들 거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모종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텃밭농사 초창기엔 욕심이 지나쳐서 애를 쓰며 모종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실패한 모종을 팽개쳐버리며 성질을 내기도 했었다.

비닐하우스가 없어 늦겨울부터 부지런떨며 간이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토마토와 호박 등의 모종을 얻고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텃밭농사 오년을 넘게 하다보니 이제 꽤가 났다.

웬만한 채소들은 때를 놓친 경우 뒤늦게 제멋대로 심기도하고, 어느 경우엔 파종해도 충분한 걸 모종을 구해 심기도 하고, 남들이 모두 모종을 구해 심는 것을 일부러 직파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텃밭의 작물들은 텃밭주인에게 만족을 준다.

남에게 파는 것이 아니기에 텃밭주인이 불만 없이 맛있게 먹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으면 좋은 점.


잡초를 제어하고 잡초보다 큰 작물을 심으니 재배하기 편하다.

파종 후의 관리가 생략되며, 결과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리지 않고 제대로 된 어린 작물을 눈으로 확인하며 심으니 땀과 시간을 절약해준다.

농약을 직접 쓰지 않는 경우 직파보다 병해충의 방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다.

씨앗을 사서 심는 경우보다 오히려 더 싼 경우도 있다(씨앗을 여럿이 나누는 경우를 제외)


 바로 파종하는 경우 좋은 점.


모종을 직접 만들어 심는 것보다는 쉽다.

모종을 사서 심는 것보다 텃밭농사에서 만지는 작물들의 생리를 이해하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는 맛이 있으니 농사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어린 채소들을 솎아 먹는 즐거움이 곁들여진다.

텃밭주인 제멋대로 농사하기에 편하다.


 텃밭농사 하는 데에 농사 교과서를 꼭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농사교과서에 언제 파종을 하고 언제 모종을 정식한다고 기재되어있거나 촌로들의 입으로 전해오는 절기에 따른 재배방법 등은 농사하는 데 있어서의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원칙으로 이해하면 족한 것으로 본다.

감자 심는 때를 놓쳤다고 감자심기를 포기할 것이 아니다. 늦게 심으면 좀 늦게 거두고, 소출이 적거나 약간 덜 익은 감자를 거두어 먹으면 된다.


 상추나 들깨 씨앗을 텃밭 한 구석에 대충 뿌려두고 한동안 잊고 지내면 어느 틈에 잡초와 함께 쑥 자란 놈들을 볼 수 있다.

잡초를 다스린 후 좀 지나면 먹을 만한 크기로 자란다.

수시로 어린 싹을 솎아내서 찬밥에 참기름과 고추장이나 된장 넣어 비비면 점심 한 끼 쓱싹하게 된다.

비 오는 날 잡아 적당히 자란 모종을 떠내어 정리된 텃밭에 심으면 된다.

배추 씨앗을 심어놓고 어린 놈 솎아서 대파 한 뿌리와 멸치 몇 마리 넣고 된장국 팔팔 끓여 저녁 먹으면 텃밭노동으로 인한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이따금 원칙에서 벗어나서 농사를 하면 그 또한 즐거움이다.

텃밭농사 하면서 너무 빈틈없이 프로농군들처럼 농사를 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작물이 신통치 않으면 또 심고, 작거나 적으면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게 좋지 않을까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깔기며 텃밭농사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원칙을 존중하며 작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들여 길러야한다.

다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더욱이 취미로 하는 텃밭의 경우에는 실수도 있고, 게으름도 있을 수 있고, 개판농사로 허탈해하는 마음도 웃음으로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텃밭농사를 잘하면 좋겠으나 취미농사하는 이가 언제나 잘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어야한다.

건강하게 지내며 텃밭 가꾸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풍요로운 것 아닐까?

즐겁게 살려면 때로는 엉터리나 바보가 될 필요도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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