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苦)

2024. 8. 5. 11:12삶의 잡동사니

라틴어를 쓰는 족속들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을 즐겨라"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지워 버려라.
미래에 끌려가지 말라.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지극히 평온해질 것이다."

어느 말이 진리일까?
붓다의 말대로 사는 건 오늘을 즐기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일까?
아니면 즐기면서 집착하지 말라는 것일까?
붓다를 모르는 이들은 붓다의 말이 진리라는 걸 모른다.
붓다가 말하는 "현재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건 아무나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붓다처럼 사성제,팔정도,,,그래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깨우친 사람이나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따라하는 이들은 붓다처럼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붓다처럼 해탈했다고 떠드는 이들은 본인이 해탈하지 못하였다는 걸 알연서도 해탈한 표를 내면서 살아야하기에 죽을 때까지 苦를 껴안고 살 것이다.
그러기에 붓다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니 해탈한 이도 진짜해탈은 인생의 마지막 숨을 고르며 반열반에 들고서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사람사는 게 희로애락의 범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희락"만을 쫒고 살며 그로인한 자신의 행복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날의 행복은 느끼는 순간이지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로애"의 연속이고 그에따라 苦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
그래서  붓다는 사람 사는 게 모두 고이고, 고를 멸하는 게 해탈의 길이라고 한 것일까?
인생살이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마주치는 苦가 바로 죽음일 것이다.
마지막에 만나는  苦를 열반의 경지로 마무리하는 사람은 정말로 깨달은 이라고 볼 것이다.
깨달은 이가 되기 위하여 인생길을 가는 이들은 붓다의 말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야 하겠지?

"과거를 지워 버려라.
미래에 끌려가지 말라.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지극히 평온해질 것이다."
ㆍㆍ

어제 일몰 한 시간 전에 들깨모종 50여 개를 캐내어 잡초가 정리된 윗밭에 올랐다.
밭흙이 마르지 않았기에 삽으로 쿡 찍어 앞뒤로 흔든 다음 들깨모종의 뿌리가 한뼘 이상 깊이 박히게 넣고 발로 눌러 다지며 들개모종을 심는다.
구덩이를 파고 깊게 심지 않는 것이기에 들깨모종이 한뼘 넘게 밖에 나오고 비스듬하게 눕게된다.
잡초 다스린 밭은 넓고, 준비된 들깨모종은 많고, 날은 어마어마하게 뜨거우니 마음이 급하다.
하루를 푹 쉬겠다고 마음 먹고도 서산에 해넘기 전 한 시간을 흘려버리기 아쉬워 들깨모종과 삽 들고 밭에 간 게 잘못이다.
이십여 개를 심고 땀을 닦은 뒤 삽을 발로 찍어누르는데 선글라스 안으로 뭔 놈이 날아들어왔다.
장갑낀 손으로 안경을 젖히고 털어내는 데 눈두덩 주위가 연속 아프고 따갑다!
아이쿠! 벌이다!
재빨리 도망을 하여 농막으로 들어와 옷을 벗는데 바지 속에도 뭐가 움직인다.
재빨리 벗는다고 했지만 허벅지 위쪽에 통증이 세게 느껴졌다.
벗은 바지에 에프킬라를 분사하고 다시 바지 속으로 분사를 하고 난 다음에 벌레물린데 바르는 약을 왼쪽눈두덩과 허벅지 쏘인 곳에 발랐다.
눈두덩에는 침 박은 자국이 보이질 않지만 눈썹 안을 살짝 찔린 느낌이 있고, 허벅지 쏘인 데는  자국이 있고 통증이 좀 크다.
바지를 털어내니 땅벌이 한 마리 떨어졌다.


그냥 약 만 바르고 멍하니 있기에는  걱정이 되어 제천서울병원으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에 쏘인지 한 시간반이 지났는데 통증이 잦아들고 눈두덩 부은 게 많이 가라 앉았으며, 허벅지 쪽은 벌겋게 부었으나 욱신거리던 통증은 많이 사그라졌다.


이거 별거 아니네?
나온 김에 인근의 하나로마트에 장을 보고나서 증세가 나쁘면 응급실로 가고 괜찮으면 바로 농막으로 가자!
농막에서 먹을 식품을 산 후에 차에서 거울을 보니 한 시간 전에 비하여 양호하다.
주사나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좋아졌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고 굳이 응급실까지 가서 처치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예전에 말벌 중탱이한테 삼십여 방을 물리고 쏘이고 했는데도 병원 안 가고도 별일이 없었는데 뭐 이까짓 조그만 땅벌 두 군데 쏘인 것 쯤이야 하고는 농막으로 향했다.
틈나는 대로 약을 바르고 충분히 수면을 취했다.

오늘 새벽에 국수와 메밀전병으로 간단식사를 하고 어제 심지 못한 들깨모종을 들고 윗밭으로 갔다.
땅벌피격을 받은 곳을 살펴보니 잘러진 잡초가  쌓인 덤불층이 두텁고 가지런하지 않았다.
그 쪽을 다시 삽질하다가 또 봉변을 당할 것 같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삼십여 개를 심고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예초기를 돌려 먼저 심은 들깨밭에 많이 자라난 잡초들을 베어내고는 새벽일 두 시간을 마쳤다.
개운하게 땀 닦고 열기를 식히는데 폭염경보로 전화기가 바쁘다.

그냥 늘어지게 쉴까 하다가 오늘이 일요일이니 바로 쉬고 저녁때 성당에 가는 것 보다는 낮미사를 가는게 좋겠다싶어 제천에 오면 주일마다 다니는 청전동성당에 갔다.
미사중에 오늘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지라 지긋이 눈을 감아보았다.
벌침소동이 말벌 왕탱이가 아닌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땅벌이 적당한 선에서 맛보기 공격만 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런 귀찮은 일이 있으면서도 여의치 않고 텃밭생활을 즐기는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오늘을 주님 앞에 나가 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데 감사하는 마음이,
등등 !
미사보는 사이 어느 순간에는 울컥하는 감정에 따라 눈물이 조금 고이고 코끝이 찡해진다.
미사 끝나고 성당을 나가면서 스무살 아래 동네 지인을 만났는데 자꾸 내 눈두덩을 처다보는 듯한 눈길이다.
그 친구는 성당차량봉사를 하기에 점심을 같이 할 시간이 없다해서 바로 헤어졌다.
차 타고 에어컨 키고 기다리며 눈두덩을 봤다.
이런! 맙소사!
눈꺼풀이 오른쪽 눈꺼풀의 두 배가 넘는 크기로 커져있다!
허벅지를 보니 쏘인 부분이 더 표가 나고, 그러고 보니 더욱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벌침이 피부 속 깊이 박히며 들어갔을 때와 벌이 슬쩍슬쩍 침끝으로 찌르기만 할 때와는  상처와 증세에서 엄청 큰 차이가 있다.
내 보기엔 요 정도는 경증이니 바르는 약으로 충분할 것이다.
며칠 동안 누가  농막에 찾아 올 것도 아니고, 또 온들 대수냐?
그냥 웃고 말지 뭐!
농막에 돌어와서는 틈틈이 약을 바르고 거울을 봤다.
공짜로 눈꺼풀보톡스 시술 했구먼!
벌침 잘 맞으면 산삼 먹은 것 이상이라는데!
이래서 폭염경보 속 염천지절에 하루를 웃고 지낸다. ㅎㅎ

지극히 평온해지기를 바라며!
(20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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