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기 번개

2009. 10. 11. 23:54삶의 잡동사니

 텃밭을 돌본지 삼 주가 지나니 텃밭이 엉망일터다.

고구마와 땅콩을 캐고, 마지막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궁리 끝에 농촌체험을 하고픈 직원들 서너 명이 텃밭에 동행하면 좋겠다싶어 텃밭에서 번개를 하겠다고 알렸다.

의외로 십여 명이 텃밭에 가서 흙을 만지고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겠다고 한다.

참여인원이 많아 텃밭일은 쉽게 하겠지만 밥과 술을 내는 일이 은근히 걱정된다.


 아침 일찍 텃밭에 도착하여 번개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먼저 부추, 고추, 쪽파, 호박을 텃밭에서 거두어 전 부칠 준비를 했고,

인근 양돈조합에 가서 돼지고기 가브리살과 삼겹살을 사왔다.

술은 막걸리, 맥주, 담근 술, 그리고 고급 코냑을 한 병 준비했다.

집에서 잘 익은 배추김치 몇 포기가 더 해지니 십여 명 손님은 충분히 치를 만 했다.


 직원들이 도착하자마자 호미를 찾더니 바로 고구마 밭으로 향한다.

고구마 줄거리를 걷어내더니 두둑을 신나게 판다.

에게 요건 뭐 이리 작나? 우와 팔뚝만하다!

탄성과 웃음으로 시간을 보내니 고구마 캐기가 마냥 즐겁다.

전과 막걸리로 허기를 채우고 두어 시간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땅콩을 캐니 다시 배들이 고픈가보다.

 숯불을 지펴 고기를 구우니 술맛이 절로 난다.

사람이 많고 일을 잘하니 고기 굽기, 술 마시기, 설거지, 쓰레기 처리 등 모든 게 일사천리다.

몇 순배 의 술이 지나가고 몇 가지 술이 들어가니 모두들 알딸딸해지고 기분들이 좋은가보다.

 취수탑 헐은 폐 목재를 옮겨와 고구마 캔 밭에 쌓고 불을 지핀다.

서산에 넘어가는 해를 보내며 한 시간이 넘게 불을 쪼이며 몸을 덥히면서 낭만을 이야기한다.

텃밭이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모처럼의 활기찬 사람들의 모임이 텃밭을 흥겹게 한다.

텃밭주인 홀로 서성이던 텃밭과는 사뭇 다른 좋은 풍경을 바라보니 또 다른 삶을 본다.

 

 

 ㅋㅋ 신났다. 흙이 이리 좋을까?

 ㅎㅎ 남자가 어울리는 풍경

 

 

 오른 손에 쥔 것은?            토종밤 !

 

 

 

 모두들 즐겁다

 에...또 얼마를 갈까?

 

  아홉시를 넘기고 모두들 떠나갔다.

다시 아주 조용한 텃밭이 된다.

캠프파이어를 했던 자리에 살아있던 불씨도 쌓인 재 아래로 스며들고, 친구의 농막에도 불이 꺼졌다.

살며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기를 느낀다.

자주 찾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서너 차례 어두운 텃밭을 왔다갔다 해본다.

 


'삶의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크릿 가든  (0) 2010.04.11
새해 해맞이  (0) 2010.01.01
가재가 다시 살다  (0) 2009.09.15
아래 농막의 꽃들  (0) 2009.09.15
청춘불패  (0) 200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