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졸업하다

2024. 12. 30. 23:34삶의 잡동사니

골프채를 처음 휘둘러 본 때가 1995년도 2월경이다.

근무하던 직장에서 인천지점장으로 발령을 받고서야 영업업무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얻은 고물 골프채를 휘두르고 혼자 배우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다.

직장동료들은 대부분 나보다 4~5년 쯤 전에 골프를 배워 즐겼지만 대인 영업과는 동떨어진 맡은 업무로 그 필요성도 없었고, 골프 치는데 따른 비용이 과다하여 외면을 했던 터였다.

당시 부랴부랴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의 골프연습장을 찾아 1년 회원계약을 하고 3개월간 세미프로의 지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골프채가 손에 익을 즈음 세미프로의 하는 짓거리가 맘에 들지 않아 혼자 골프관련서적을 탐구하며 스윙의 기본을 갖추었다.

서툴고 한심한 스윙에 3개월 후에야 정식으로 골프장에서 머리를 올렸다.

스코어카드는 엉망이고 타수를 기록할 필요도 없는, 캐디가 봐주며 적은 120여 타수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하루였다.

출근 전 새벽이나 퇴근 후 밤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절치부심하며 연습을 하니 일취월장하여 이듬해에는 보기플레이어들인 동반자들의 지갑을 수시로 열어젖히는 실력이 되었다.

골프룰 책을 책상과 잠자리 옆에 놔두고 자주 보아 자주 심판관 구실을 하였고, 톰왓슨과 잭니클라우스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 스윙을 익혀갔고, 골프관련 심리를 주제로 한 여러 책들과 친하면서 멘탈을 강하게 하니 한동안 싱글 잡는 보기플레이어로 주위에 소문을 냈었다.

그래도 진짜 7짜 싱글은 골프를 배운지 4년이 지나고서야 기록하였다.


그때에 처음으로 파4홀에서 이글도 기록하였다.

그 이후 파5홀에서 이글을 한 번 더 하였으나, 파3홀에서의 홀인원은 골프인생 중 아쉽게도 한 번도 못했다.

골프인생 중 엄격한 노타치노기브를 적용한 7짜 싱글을 열두 번을 기록했으니 봉급쟁이 나름 참 잘 치는 골퍼였다고 생각한다.

골프관련 트로피는 싱글&이글기념 하나이다.
금이 세 돈이라는데, ㅎㅎ 버릴 수 없어서 !

13년 전에 척추(3~4번)수술을 한 후에도 골프를 계속 즐겼고, 3년 전에도 또 한 번 척추(4~5번)수술을 하고서도 몇 차례 골프를 쳤었으나, 작년 가을에 27홀을 이틀간 두 번을 한 후에 허리 느낌이 편하지 않아 작년 말에 골프를 끊는다는 선언을 하였었다.

그리고는 올해 들어 그 선언을 잘 지키다가 초가을에 그래도 졸업기념골프를 한 번 해야지 않겠냐는 몇몇의 꾐에 할 수 없이 한 번 라운딩을 하였다.

마지막 골프게임은 조폭게임, 내가 마지막 3개 홀을 승리하여 졸업기념골프를 장식했다.

나이 만 75세를 지나니 친구들과의 골프가 꽤나 어려워진다.

몸이 아파서, 여유가 없어서, 이미 끊었다는 등으로 동반자 구성이 어렵다.

선배들하고의 구성은 불가능 수준이고, 후배들과의 구성도 쉽지가 않다.

수도권 주변의 좋은 골프장들에서 골프 치는 비용이 너무도 비싸 쉽사리 주변에 골프치자는 소리를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나 자신 골프를 치며 동냥하는 기분을 느끼는 골프는 한 적이 없기에 더욱 골프를 칠 일이 없다.

상쾌하게 즐길 골프가 어려우면 아예 끊는 것이 정답이다.

나에게는 취미거리가 참 많으니 골프 한 가지 뺀다하여도 별일이 없을 터이다.

그래도 골프를 졸업하며 골프채를 바라보니 떠오르는 여러 감회가 많고 섭섭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골프채를 보관할까 아니면 남을 줄까 결정을 못하였다.

남 줘봐야 얼마 안가 버릴 것이고, 집안이 넓어 보관에 귀찮은 것도 아니니 인생길의 기념으로 일단 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나을 듯하다.

취미도 인생길을 따라 가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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