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파기

2023. 7. 9. 21:09농사

종일 땅구덩이 파 봐라. 돈 나오는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내 또래의 아이들이 용돈 좀 얻으려고 어른들에게 떼를 쓰면 흔히 듣던 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요기하고 삽을 들고 들깨 심을 밭으로 가서 구덩이를 한 시간 동안 팠다.
배구공하나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오십여 개 파내니 머리끝부터 발까지 땀이 흐른다.
어제 비가 좀 내린 뒤라 돌이 없는 부분은 삽이 푹푹 들어가지만 수시로 주먹만 한 돌이 출현하니 진도가 빠르지 못하다.
땅 파니 돈 안 나오고 땀만 흘러내린다.
더 하다가는 텃밭일이 운동이 아니고 노역이 된다.
노역을 하면 힘들고 짜증 나니 운동이 과하다 싶으면 즉시 쉬고 휴식을 하면서 심신을 맑게 하여야 그다음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뤘던 아침커피를 내려서 마시며 소리통을 켠다.


내일부터 며칠 비 내린다는 예보이니 집에 가기 전에 들깨모종 150여 개를 더 심는데 지장이 있을지 모르겠다.
들깨모종 들어앉게 구덩이를 100여 개를 더 파내야 하는데.,.!
말이 들깨모종정식이지 실제로는 크게 자란 들깨를 다른 밭으로 이식하는 일이다.
일단 구덩이를 큼직하게 파내면 감자밭에서 멋대로 자란 한자 반 크기의 들깨를 캐다가 심는 일은 구덩이를 파는 일보다는 수월하다.


오늘 아침에 한 것과 같은 운동을 두 번 더 해야 하니 땀 또한 두 배는 더 흘려야 한다.
목덜미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상의를 푹 적시고, 다리에서 흐르는 땀이 양말까지 적시는 한 시간의 일은 집중적인 운동을 한 후에 얻어지는 것과 같은 쾌감을 불러온다.
땅 구덩이 파 봐라. 돈이 나오나?
돈은 안 나와도 최고급 들기름과 들깻가루가 구덩이 파는 만큼 많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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