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1)

2006. 1. 13. 01:29마음, 그리고 생각





 

직장을 그만 둔 이후에도 왜 그리 세월이 바쁘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느긋한 세월을 보내지 못하였다.

백수명부에 등록을 하고는 마음 놓고 한 몇 개월 늘어지게 잠도 실컷 자고 책도 며칠씩 눈이 아플 정도로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제대로 해보지를 못하였고, 좋아하는 등산과 낚시를 신물이 나도록 즐기겠다고 계획만 하였지 도통 재미를 보지 못했다.

따져보면 장래에 대한 불안이 있어서도 아니고, 마누라가 채근하는 바람에 집의 일을 돕느라고 시간을 뺏겨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밭뙈기를 천여 평 산 이후로 여유 있는 모든 시간을 돌멩이와 물을 다스리느라고 투입하는 바람에 느긋함을 잊은 것이다. 다만 남이 시켜하는 피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주관과 의지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돈을 벌지는 못하였어도 한편으론 만족스러운 맛이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된다.

조직에서 한 구성원으로 일하는 신분과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과 능력으로 살아야 하는 지금의 신분을 비교하여 볼 때 생산성을 따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지금의 내가 엄청난 열위에 놓여지지만, 능동적 삶에 바탕을 둔 육체노동의 상쾌한 땀의 맛을 통하여 얻는 만족도는 분명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내가 우위에 있다고 보며 이를 즐기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의 나의 형편을 합리화 시키는 알량한 자존심이나 얄팍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나이 들어가는 입장에서 냉철한 판단 하에 삶을 조명해 볼 때 느끼는 것이다.

물론 나와 나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는 기본적인 걱정거리를 떨쳐버리질 못하지만, 어찌 보면 그러한 걱정은 범부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지금에 와서 새롭게 화두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평생을 어떠한 상황에서나 그런대로 낙천적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더 이상 따질 게 못된다고 볼 것이다.

좀 창피스런 이야기지만, 나는 그러한 걱정을 인정머리 없게도 나의 마누라에게 덤터기로 씌어 버렸다.

그렇다고 만사 나 몰라라 할 수는 없기에 시간이 있는 대로 함께 고민하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마누라가 원하는 노력봉사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행을 하고 있다.

그러한 시간 이외엔 거의 텃밭에서 돌, 물, 흙과 장난치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농사에 재미를 붙이고, 고단한 저녁시간 이후로 적막강산에 심신을 담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왔다.

아마도 텃밭농사 삼년차인 금년에는 그러한 시간이 작년보다 두 배로 늘게 될 것 같다.


마누라는 내가 12년 전에 근무했던 지역인 인천 중구 신포시장에서 아주 작은 가게를 하고 있다. 간판은 NIKE KIDS'로 전국에서 제일 작은 가게이며, 맛이 간 재래시장인 신포시장에서도 제일 작은 실 평수 5평이 채 안되는 구멍가게이다.

과거 2년간 내가 활동을 한 지역이어서 지금도 아는 상인들이 많아 나 스스로도 다니기에 불편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그러한 곳에서 형편없이 작고 초라한 가게를 창피를 무릅쓰고 몇 년째 운영하는 마누라가 무척 안쓰럽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간의 심적 어려움을 극복한지 이미 오래되었고 나나 마누라나 모두 시장 통 장사꾼이 되어버렸다.

마누라는 대형백화점과 마트의 주변입점으로 인한 재래시장의 한파와 기업구조조정에 기한 봉급쟁이의 구매력저하에 맞서 필사적인 마케팅구사(몸에 밴 친절, 깨끗한 환경 유지, 수준 높은 코디네이션 구사 등으로 단골고객을 늘려 왔음)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간 매출액을 증가시켜 왔다.

나는 가게에 있을 때도 손님이 두어 명 들어오면 재빨리 밖으로 나간다.

워낙 좁아 안에 있기에 불편하다. 손님이 이것저것 찾으면 나도 덩달아 바빠진다.

3층에 있는 창고(창고는 가게에 비해서 엄청 크다:23평)를 열 불나게 오르내린다.     

“코르테즈661칼라3와이하나,493217공11칼라미디엄하나”라고 마누라나 우리직원(신주같이 받드는)이 말하기가 무섭게 20초 이내에 창고에 올라가 찾아서 대령을 한다. 내 다리가 아무리 바빠도 불평이 없다. 잘 팔리기만 한다면.

어쩌다 진상이 나타나면 이래저래 맥이 빠진다. 진상이란 한 마디로 꼴값을 떠는 넘으로 사지도 않으면서 기분을 상하게 한다. 아이를 데려와 이 신발 저 신발 신겨보고, 이 옷 저 옷 입혀보고, 그 것도 하필이면 우량고객이 물건을 고를 때 패션쇼를 벌이고는 사지도 않고 “뭐 맘에 드는 게 없구먼!” 하고 영업방해를 하고 나간다. 성질 같아선 한대 갈겨 버리고 싶지만 한마디 말도 못하고 꾹 참는다. 인내심을 여러 번 발휘한 후에 단골고객이 된 경우도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가게 식구들은 수양을 계속하고 있다.

남의 지갑에 있는 돈을 가게에 있는 금고로 끌고 오기가 무척 힘들다.


가게의 잡일은 내가 당연히 하여야 한다.

특별히 힘이 드는 청소, 전기와 수도에 관계된 일, 창고의 선반 등의 시설과 창고 정리 등은 내 몫이다.

마누라가 고생을 하는 데 내가 몸을 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년간의 힘든 세월을 지내고도 다시 도전을 해본다.

1년 반 전에 실패한 가게를 정리하고 좀 정신이 들어 이 번엔 코딱지만한 가게를 넓히기로 하였다.

가게에 붙은 비워있는 가게를 합하여 확장공사를 하는 중이다.

마누라가 피곤한 다리를 뻗을 공간을 마련하고, 어쩌다 나타나는 내가 손님이 들어와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크기로 넓히고 있는 것이다.

가게의 평수가 11평이 되어 그래도 구멍가게 이지만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걱정도 많이 된다.

매출이 두 배는 아니라도 한 30퍼센트는 늘어야 되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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