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2. 31. 01:15ㆍ마음, 그리고 생각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다.
아마도 고생이 좋아서 가난을 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자가 아무나 되나?
무지 무지한 내핍생활을 평생 하여도 땡전 한 푼 모으지 못하고 지질이도 못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있게 대박 터져서 주체할 수 없는 돈을 흘리고 사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건 인생에서 모아놓은 재물을 덧없이 날리는 횡액이 없는 한, 봉급쟁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알뜰하게 절약을 하며 살면 어느 정도 재물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큰 부자가 되느냐 아니냐는 인위적으로는 되지 않는 것 같다.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부자는 항상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사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내가 10여 년 전부터 나의 업무상 일로 인해 잘 아는 한 부자가 있다.
그 부자는 언제나 가난하다.
그 부자는 현금자산만도 한 오십억 원 정도를 갖고 있는 대단한 부자인데, 그 부자는 언제나 거지같이 살고 있다. 그는 매일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는데 도가 튼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매 끼니때쯤 되면 그 부자가 어른거릴 때 그를 피해간다. 어쩌다 그 부자가 아는 사람하고 만나 식사를 하러 가면, 상대방이 밥을 다 먹을 때 그 부자는 반도 안 먹고 계속 우물거린다. 점심을 먹으며 보통 소주 한병을 비운다. 그 부자가 다 먹기를 기다리다 참다못한 상대방(나도 그 상대방이 최근까지도 여러 번 된 적이 있음)은 제 풀에 지쳐 밥값을 내고 만다.
그리고는 또 그 부자는 커피를 공짜로 얻어먹을 곳을 두리번거린다.
어쩌다 여러 명이 함께 멀리 놀러갈 땐 절대로 자기 차를 가져가는 법이 없다. 자기 차에 흠집이 생기는 것도 두렵고 기름값 드는 게 아깝기 때문이다. 물론 신세진 사람의 차에 들어가는 기름값도 전혀 내는 법이 없다.
매사 그런 식으로 살아 돈을 쓸 일이 없어서인지, 언젠가 내가 그 부자의 주머니를 봤는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천 원짜리 지폐 서너 장이 전부이다. 아마 지갑을 잃어버릴까봐 아니 그 보다도 돈을 낼 일이 없도록 아예 갖고 다니질 않는다.
그 부자는 미성년자 시절에 상점에서 매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극도의 내핍생활을 하며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그 상점을 인수하고, 계속해서 상가건물을 사들였다. 때가 맞아 부동산의 호황으로 큰 부자가 되었고, 재수있게 하는 일마다 성공을 하여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부자는 재수있어서만이 아니라 부자되는 공부를 남보다 몇 배를 한 결과 더 큰 부자가 된 것이다.
지금 그 부자는 육십 중반을 넘어가는데 아직도 옛 시절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남이 어쩌건 그저 돈 불어나는 것에만 즐거움을 느끼고, 매일 밤 늘어나는 돈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 부자는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거지이다.
좋은 일에도 돈이 들어가면 외면하고, 궂은일도 돈이 되면 악을 쓰며 대든다.
돈 버는 일엔 절대로 남을 배려하는 걸 보지 못했다.
이런 부자가 과연 부자인가?
백수가 된 내가 보기에도 그 부자는 참으로 불쌍한 거지이다.
자기가 가진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보다도 못한 거지와 다를 바 없다.
돈이란 올바르게 쓸 때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쓰질 못하는 돈은 없는 거와 다름이 없고, 아니 없는 것보다도 더 못한 것 아니겠는가?
내가 좀 부자이면 참으로 할 일과 즐길 일이 엄청 많을 텐데...
참 유감이다.
스님 法頂은 아주 가난하게 산다.
스님은 아마 책이 팔려 매년 들어오는 돈만 해도 아주 큰 부자일 터인데 아주 청빈하게 산다. 아니 거지같이 산다고 할 수도 있다. 산골짝 작은 오두막에서 세간 살림 변변하게 갖추지 않고 수도하며, 공부하며, 항상 배고프게 지내며 살고 있다.
스님은 가진 재산 그리고 들어오는 재산 전부를 절과 중생을 위하여 아낌없이 쓰는 아주 큰 부자이다.
나는 불자도 아니면서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한 스님을 아주 좋아한다. 물론 스님이 쓴 책은 빠짐없이 보고 있으며 나이 먹어 다시 읽어보고 크나큰 감명을 받고 있다.
나이 더 먹고 난 뒤에 읽어보는 스님의 글들은 확실히 예전의 느낌과 아주 다르다. 솔직히 예전엔 “무소유”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등을 읽으며 ‘좋은 이야기인데 땡중이 뭐 지 도 닦았다고 자랑하며 좀 크게 보이느라 수식 좀 하며 쓴 이바구만!’하며 읽었는데, 내가 스님을 책으로 접하고 이 십 여년을 지나오면서 스님의 행적을 관찰하며 다시 읽어보는 스님의 글들은 불경을 제대로 모르는 나의 입장에선 ‘아! 이 글이 바로 불경이구만!’ 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들었다.
스님은 아주 큰 부자이다. 정말로 가진 게 부자이고 마음도 대단히 큰 부자이다.
남에게 나누어 줄 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중생을 받들어주는 스님이야 말로 엄청 큰 부자가 아니겠는가?
가진 것 없이도, 아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남에게 주어서 빈 털털이로 지내면서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도를 닦는 것이고, 늙어서도 물욕에 젖지 않고 이를 실행하는 스님이 바로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돈 많은 거지이기 보다도 가난한 부자이기를 바라며 살고 싶다.
어찌 보면 그러한 나의 생각은 아마도 사치에 가까운 것이겠지.
내가 백수가 되고 난지 2년 동안 산골짝 컨박스에서 이따금씩 궁상맞게 지내며 나름대로의 사색을 통하여 얻은 결론은 내가 부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부자는 돈이 많아 부자이면 금상첨화이나 그렇지 못한 나의 형편으로는 돈이 모자라도 내 맘에 부자이면 족한 그러한 부자이다.
내가 어찌 스님 법정을 흉내나 내겠는가?
단지 스님의 마음을 좀 닮아서 사람의 구실을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려하는 것이니 그런 수준의 사치는 용서받을 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