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르는 마음

2017. 1. 19. 14:55삶의 잡동사니

 난을 기른 지 삼십 년이 된다.

난에 빠져있던 직장동료의 집에 갔다가 이름 모를 세 촉 짜리 난을 얻어 기른 것이 1987년도니 삼십 년을 난을 만지며 살은 꼴이다.

 그 당시 난이 예쁘게 보여 난을 틈틈이 사게 되었고, 급기야 전라남북도 해안가를 뒤지며 산채를 하는 열성을 가져보기도 하였었다.

산채를 하러 다니는 수준이니 승진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선물로 보내는 흔한 난들은 눈에 보일 리가 없었고, 종로 5가 주변의 길거리 난가게를 두리번거리며 좋아 보이는 난들을 흥정하는 재미를 곁들여  점심을 이따금 동대문시장가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탈을 자주 가져보기도 하였었다.

 봉급쟁이라 비싼 난은 일차 수집대상이 아니고, 담배값이나 술값 아끼며 마누라 눈치보기에 별 힘이 안 드는 촉당 삼만 원 상당의 모양 있는 난들이 수집대상이었고, 값이 싸면서도 기품 있다고 느꼈던 소심류의 난을 즐겨 편하게 샀다.

내가 사서 길렀던 난들의 촉수가 늘어나니 여기저기 분양하거나 축하의 뜻으로 보내는 선물로 멋지게 활용하는 즐거움을 누렸던 때도 많이 있었다.

한창 난식구가 많았을 때는 백이십 여 화분이었으니 그때는 그 놈들 돌보느라 하루도 빠짐없이 상태관찰을 하여야하니 난치는 놈들과는 친구하지 말라는 말의 뜻을 스스로 알만도 했었다.


*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아프고 죽어가는 녀석들을 손 보아 다시 살리는 중.




 십여 년이 더 지났나? 언젠가 맹추위가 있었는데, 일기예보를 모르고 물을 흠뻑 주고 깜빡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차 싶어서 난들을 바라보니 멀쩡해 보여 그런대로 안심이다 했는데 웬걸 그해의 가을까지 슬슬 죽어나가 열 댓 분만 살고 나머지는 주인 잘못 만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을 다했다.

시장가격으로 보아 비싼 난들은 없었지만 내 기준으로는 엄청 비싸고 아끼고 좋은 난들을 무더기로 보내고 나니 세 해 동안 난 모셔두는 화분대가 텅 비어있었다.

텅 빈 난화분대가 보기에 딱해 다시 또 슬슬 입양을 시작한지 몇 년 만에 지금의 난화분대에는 육십 여분의 화분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에는 제일 비싼 난이란 녀석이 88올림픽 무렵에 거금 십오만 원 주고 산 옥금강(요 녀석은 동사를 피하고 작년 여름에 기품 있는 꽃을 선사했었다)이, 대부분이 소위 싸구려 난이란 범주에 속하는 난들로 채워져 있다.


* 풍란이 향도 좋고,  공간이 작아도 기르기 편하다. 요즈음은 작은 녀석들을 싸게 사서 자꾸 늘리고 있는 중이다.





* 석곡을 작게 쪼개지 않고 큼직한 화분에 함께 심어보니 의외로 모양이 좋다.



 난을 시장값으로 따지는 건 못된 거란 걸 일찌감치 아는 바라, 난을 살 때에는 모양과 주머니사정에 따라 골랐으니 소위 비싼 난이란 게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내 기준으로 좋아하는 녀석들을 기르고 보살핀다.  이따금씩이나마 선사해주는 꽃과 향을 즐기는 기쁨이 있으니 나의 난 기르기는 내 형편에 아주 잘 맞는 취미이고, 게다가 마누라까지 아껴주고 좋아하니 집안에 생명의 기운을 뿜어주는 활력소가 되고 있어 참으로 좋지 않은가!

 오늘 난화분대를 살펴보니 한란 두 녀석이 꽃대를 쭉 뻗고 있다. 그 중 피고 있는 놈을 거실로 들이니 은은하고 맑은 청향을 집안으로 뿌려댄다.

 설날에 식구들 모이는 걸 반겨주는 행복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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