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금강의 개화

2016. 6. 7. 20:12삶의 잡동사니

 소엽풍난 옥금강을 사서 기른 지는 이십칠 년이 지났다.

88올림픽 후 다음 해 상여금을 받은 어느 때인가 큰 맘 먹고 십오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튼실한 두 촉을 샀는데 이상하게도 일곱 촉으로 자랐지만 그 간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다가 이제야 꽃을 보여준다.



 지금에야 비쌌던 옥금강도 조직배양 한 포트에 일 만원 아래로 살 수 있는 흔한 난으로 신세가 전락되었다지만 오랜 기간 내 딴에는 꽤 비싼 돈 주고 산, 자태가 하도 좋아 아끼고 마음을 주며 지내온 난인지라 귀하게 보살펴왔다.

육 년 전 한 겨울에 얼빠지게도 베란다에 있는 난분에 물을 주고 창문을 닫지 않아 육십 여 분의 난들을 미련하게 얼려 죽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죽지 않고 산 난들 중 옥금강도 끼어있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더욱 애지중지 살펴 왔는데 이제야 개화를 해서 주인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남들이 보면 그까짓 것 흔한 풍난 꽃 피우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하겠지만 오랜 기간 정주고 키운 난이니 내겐 참으로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꽃대가 오르는 것을 본지 나흘 만에 조그맣고 단아하고 희게 활짝 피운 걸 보니 아내와 나는 신바람이 났다.




 이주일 전부터 쌍대를 올려 한껏 뽐내면서 우아한 향내를 진동시키는 대엽풍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뛰어난 귀품을 주인에게 선사하는 옥금강의 청향에 주인은 코를 살며시 대어가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요새 손자 녀석의 재롱으로 웃음이 집안에 넘치는 데, 풍난의 청향이 집안을 평화롭게 감싸주니 우리 부부는 함박웃음과 잔잔한 미소를 연이어 발산하며 살고있는 중이다.

 아내가 오랜 세월 영위하던 가게를 접어 허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참 다행스럽다.

말 못하는 난들이지만 보살펴온 주인들의 세상사의 고달픔을 달래기나 하듯이 연이어 예쁘고 향기로운 꽃들을 피우며 위로해주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때로는 미안스럽게도 무심하게 기르는 난들이지만 주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보답에 크나큰 고마움을 느끼며 정성껏 보살필 것을 다시 금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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