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29. 01:51ㆍ마음, 그리고 생각
농장을 가꾸는 이들은 누구나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가꾸는 농장이 잘 정리되어지고 자라는 나무나 농작물이 싱싱하고 예쁘게 보일 때에는 디카가 열을 받을 정도로 셔터를 눌러대고 잘 나온 사진들을 정리해 놓는다.
나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텃밭이 소나무가 많은 산 아래라 내 산이 아닌데도 내 산의 소나무처럼 내 텃밭을 치장하기도 한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농작물을 심으며 때로는 완전하게 실패도 하고 길러보았자 신통하지도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초보농군의 사진기에는 언제나 잘생기고 멋진 농작물 작품으로 찍히는 연출이 계속된다.
텃밭에 움막 같은 컨테이너박스가 있고 뒤쪽에 정랑과 간단한 목욕통이 있으나 어떤 땐 호텔 급 시설로 묘사되기도 한다.
전문적인 농사를 하는 이나 취미로 농사를 하는 사람이나 농사를 하는 공간에 대한 바람은 거의 일치하는가보다. 활동하고 즐기는 무대가 우선 각자의 마음에 들게 치장이 되어야하고 남 보기에 그럴 듯하여야 만족스런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농사를 취미로 하고 있고 텃밭이 어찌 보면 도량과 같은 장소이기에 다소 이상스런 모양이 형성되어있다.
농막은 목수의 창고와 다름이 없고, TV나 PC도 없이 달랑 주먹만한 라디오 한대가 이따금 한 시간씩 소리를 낸다. 텃밭일 하다가 쉴 때 심심풀이로 듣는데 버튼 한번 누르면 한 시간 동안 켜지고 삼척과 충주 MBC 만 나온다.
텃밭은 땀내며 부지런하게 가꾸지만 언제나 온통 풀로 덮여있다.
농작물의 성장상태에 따라 이따금 김을 매거나 베어내지만 농사 좀 짓는 사람이 보면 한심한 표정을 지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어느 친구가 농작물학대죄로 고발을 하겠다고 우수개소리를 하였을까?
유기농에 관하여 제대로 준비도 하질 않고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 비닐멀칭 등을 거부하며, 한술 더 떠서 목초액, 식초, 우유, 발효액 등 소위 친환경재료까지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또한 만지기도 귀찮아 내깔기는 농사를 하니 그 소출은 보지 않아도 뻔하고 형편이 없다.
올해까지는 농협에서 공급하는 퇴비를 조금씩 사용하였는데 그나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장에서 만드는 퇴비의 재료도 좋지 않은 듯하고 발효 또한 완벽하지 못하여 구지레한 냄새가 나 내후년에는 스스로 만든 퇴비만을 사용하려고 한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텃밭은 머리만한 돌과 키만큼 자란 풀로 덮인 괴상한 모양의 밭이다.
눈이 내리고 나야 텃밭이 그럴 듯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있는 농작물은 들쑥날쑥 자라고 열매는 일정하게 고르지도 아니하고 작은 것들이니 상품성이 없으며, 벌레가 파먹던 갉아먹던 내깔겨둔다.
이따금 예초기를 왱왱거리며 돌려서 풀들의 목을 쳐대니 한 달에 서넛 올라오는 동내 촌로들이 면전에서 침을 튀긴다. 제초제 확 뿌리고 비료와 농약 듬뿍 주면되는데 뭘 하느냐고 잔소리 잔뜩 하고는 동네에 내려가서는 손바닥만한 텃밭 하나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이상한 놈이 와서 풀씨만 번지게 만들고 벌레만 끌어 모은다고 흉을 본다.
농사를 하는데도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관행, 유기농, 자연농, 친환경, 저농약, 화학비료, 비료, 퇴비, 제초제, 농약, 친환경제초제, 미생물, 천적, 효소, 목초액, 분변토, 소똥. 돼지똥, 닭똥, 인분주, 비닐하우스, 멀칭, 망 씌우기, 성장촉진제, 발색제, 경운, 무경운, 혼작, 윤작, 휴경, 적심, 씨앗, 파종, 모종, 정식, 거두기, 갈무리,,,,,, 농사에 관한 모든 이름과 용어에 하나같이 농사하는 이의 선호가 다르고 방법이 다르며 제 각기 자기들의 방법과 선택이 최고인 양 자랑을 한다.
프로와 아마가 기본적으로 농사기술상 대별되며, 크게는 관행농법과 여타의 농법이 구분된다. 웃기는 건 생산하는 농작물을 제대로 팔지도 못하는 아마들이 비방과 비책 등의 농사기술을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요란하게 자랑하는 것이다.
하긴 나도 예외가 아니다. 잡풀이 점령한 맨땅에서 푸진 수확을 하겠다고 삼년을 계속하여 허튼 일을 하고 있으며, 농작물의 모양이 좀 좋아지고 포기당 생산량이 눈에 띄게 늘면 마치 농사의 대가나 된 것처럼 자랑을 해대니 말이다.
분명한 원칙은 있다.
프로는 농사로 반드시 수입을 올려야 하고, 아마는 농사로 언제나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농법을 자랑하고 비방과 비책을 동원하여도 프로가 농사로 먹고살기가 부족하고 아마가 헛일을 했다고 씩씩거리며 화를 내면 실패한 농사라고 보아야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농약을 친 농산물을 먹었어도 수많은 인간들이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으며, 오히려 비실비실한 사람들이 무 농약으로 생산된 농작물과 물까지 암반생수로 사서 먹고들 있으나 그렇게 유별난 사람들이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되는 것이 입증된 바도 없으니 굳이 유기농이 최고라며 우길 일도 아닌 듯하다.
친환경농법을 구사하여 인류의 먹을거리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한 것은 유기농 내지 친환경농법으로 우리의 먹을거리가 충분하게 해결되고 있지 않는 점이다.
나라의 통계조차도 믿을만하지 못한 형편으로, 아마도 엄격하게 따진다면 완전한 유기농산물은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5%도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자연적인 그리고 완벽한 유기농을 지향하는 텃밭농사 3년을 해보고 맛을 본 결론은 남에게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만한 유기농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겨우 맛보고 이웃에 나누어주고 자랑하며 희희낙락하는 정도 이상을 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제철에 생산된 농작물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아이들은 딸기가 겨울에 눈 속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여름철에 귤을 따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철보다 이르거나 늦게 수확을 하여 시장에 내 놓아야 돈을 많이 벌게 되니 지금에 와서는 제철 농산물이 오히려 더 비싸게 팔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종자도 자꾸 조생이나 만생으로 개발되다보니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는 맥을 못 추고 비실대며 튼실하게 자라지 못하는 가짜 우량종자들이 종묘상 진열대를 점령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우리 땅에 오랜 세월동안 적응을 하고 병충해에도 강한 토종들은 제철 농산물이 푸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그리고 크고 단맛을 선호하는 나약한 인간들 때문에 점점 그 세력이 약해지며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농사로 세월을 보내려하는 아마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아마의 농사는 프로를 닮아가는 농사와 개성강한 제멋대로 농사로 나눌 수 있겠다.
농사를 잘하든 잡치든 농사 자체를 즐기는 아마라면 아무렇게나 제 좋을 대로 농사를 하면 되겠으나, 소출에 욕심을 낸다면 프로의 농법을 흉내 내는 것이 제일 무난할 것이다.
그러나 취미농사의 백미는 완전한 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는 유기농에 있다할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유기농은 프로도 감히 쉽게 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농법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유기농에 맞지 않고, 판로가 용이하지 않고, 대량생산을 하기가 어렵고, 바로 큰 소득을 얻기에 힘들기 때문에 시도하다가 때려치우는 농사전문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유기농이 난해하고 전문적인 농사방법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오지에서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 자연에 친하고 스스로 먹고살기에 족한 정도의 농산물을 얻기 위하여 소박하게 농사를 짓는다면, 그리고 만족한다면 그것이 바로 완벽한 유기농이라고 본다.
잡초가 밭을 지키는 좋은 풀이라고 여기며, 독한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와 비닐이 뭔지도 모르며, 똥과 오줌을 귀히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벌레도 농작물을 먹을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보아 그대로 놔 둘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사는 사람이 하는 농사, 그것이 바로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유기농이 아닐까한다.
프로든 아마든 자기가 개발하고 실천하고 재미 본 농사의 방법과 병충해의 방지와 제거 등에 관한 비책을 자주 자랑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래야 농사지식이 없는 이들이 배워서 농사에 재미를 붙일 수 있고, 그러한 방법과 비책들이 결집이 되고 정리가 되어 농사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의 경우엔 고집이 있어야 하고 그 고집으로 농사를 망쳐도 웃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겪고 남의 조언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여 재미를 못 보아도 농사에 있어서의 좋은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즐길 줄 알면 산지식을 얻음과 동시에 농사 자체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음,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텅빈 고구마 통 (0) | 2007.01.31 |
---|---|
친환경농산물 믿어도 되는가? (0) | 2006.12.18 |
마누라와 영화보기 (0) | 2006.10.25 |
농심과 농기구 (0) | 2006.10.23 |
벌써 가을이 (0) | 2006.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