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30. 19:05ㆍ마음, 그리고 생각
텃밭 갔다온지 열흘 만에 휘파람을 불면서 돌밭을 향한다.
덕평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제천시내의 마트에 들러서 먹을거리를 조금 샀다.
돼지고기 200g, 우유 한 병, 두부 한 모는 날이 더워서 차안의 글로브박스에 넣고는 시장과 농자재마트를 들러서 돌밭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짐을 농막에 옮기려고 트렁크를 열려하니 열리지가 않는다!
차안의 열림버튼을 눌러도, 스마트키의 열림버튼을 눌러도, 트렁크 뒤에 서서 기다려보아도 전혀 소리가 나지도 않고 미동도 안한다!
일단 글로브박스에 넣었던 고기, 우유, 두부는 농막으로 옮겼으나, 트렁크에 있는 옷가지와 잡동사니와 몇 개의 모종들을 꺼낼 수가 없다.
이런 젠장!
한참을 애꿎은 버튼을 누르다보니 내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종을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트렁크에 넣을 때 그 비닐봉지가 트렁크잠금장치에 낀 것이라 생각하니 뭐 그리 바쁘다고 허둥대며 짐을 실었나하고 반성을 해본다.
한참을 어떻게 열 수 있냐를 생각하다 드디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트렁크에는 트렁크 안에서 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뒷좌석에 붙어있는 트렁크와 통하는 구멍을 열고 손전등을 비추어보니 트렁크 자물통 쪽에 뭔가 보인다!
화살표방향이 보이는 게 그쪽으로 밀면 열릴 것이다!
농막에 있던 등산용지팡이를 길이에 맞게 늘려서 몇 차례 시도 끝에 트렁크가 열렸다!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면서 난 내가 무척 똑똑한 인간이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열린 트렁크의 자물통을 보니 비닐 끼어있는 것이 없다.
허 참! 이상하네!
어쨌든 짐을 다 옮기고 연못에 넣을 붕어를 잡으러가려고 낚시도구를 실었다.
아차! 다시 트렁크를 열어보는 데 또 안 열린다!
이런 쌍!
다시 손전등 비추면서 낑낑대며 등산지팡이로 트렁크를 열었다.
날이 아직 밝으니 시내 카센타에서 고쳐야겠다고 갔으나 일곱 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마침 한군데 열려있는 정비소가 있어 급하게 차를 대고 수리를 요구했으나 정비소 사장은 기술자가 퇴근하고 없으니 다음날 오란다.
그래도 좀 봐 달라 했는데 이 사람 차 안의 버튼과 스마트키의 버튼을 몇 번을 나처럼 누른 후 모르겠다고 한다.
농막으로 돌아가 낚시를 포기하고 곰곰이 트렁크의 열림과 닫힘을 생각했으나 왜 그런지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전처럼 스마트하게 열수 있는 방법을 찾지를 못했다.
다음날 제천의 블루핸즈를 찾았다.
정비소에 들어가자마자 맞이한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글로브박스를 열고 박스 위쪽에 있는 작은 단자를 누르더니 스마트키로 열어보라한다.
바로 열렸다!
글로브박스 안에 있는 트렁크 개폐장치단자를 전날 식품을 넣을 때 나도 모르게 “폐”로 눌렀던 것이다.
농막으로 가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농막에 도착을 하고서야 “에구! 이런 바보야!”라고 혼자 소리치며 스마트키를 분리하여 수동키를 빼내어 트렁크의 외부키꽂이를 찾아 넣어 돌려보았다.
당연히 쉽게 열렸다!
여태껏 스마트키를 휴대하고 트렁크의 버튼을 누르거나 트렁크 뒤편에 서서 트렁크가 열리길 기다렸지 수동키를 빼내어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전날 정비소 사장이나 블루핸즈 직원도 스마트키에 수동키가 삽입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세상의 흐름이 빠르고 스마트해지니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날로그감각을 점차 잃어버려가고 있다.
우주정거장에서도 망치로 해치를 열어야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며, 소설 “유령함대”의 이야기처럼 첨단무기들이 한 순간에 쓸모가 없어지면서 구형 무기로 전락한 줌월트호가 오히려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중국을 고꾸라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최첨단이고 최고의 디지털기기라 해도 아날로그의 역할이 전면적으로 배제된다면 아주 어리석고 위험하게 발전된 물건이라고 할 것이다.
스마트키에 아날로그적인 열쇠가 삽입되어있다는 것을 스마트키가 적용된 자동차를 타는 이들은 자동차의 매뉴얼을 읽어보았다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편리한 방식에 길들여지면서 열쇠를 사용해볼 일이 없어지니 단순한 실수로 생각지도 못한 버튼을 눌러 발생된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빨리빨리 돌아가고 계산된 대로 정확하게만 작동되는 첨단기계들을 이용하는 일이 많을수록 어떤 난처한 일이 발생되었을 경우에는 한 템포 속도를 늦추고, 아날로그적인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며 차분하게 대응하여야 좋을 것이다.
급해서 허둥대면 제대로 보이질 않고, 화가 나면 똑똑한 사고방식도 잊기가 쉽다.
나이가 들수록 천천히, 차분하게, 화내지 말고, 아날로그적인 생각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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