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5. 20:35ㆍ마음, 그리고 생각
올 부터는 텃밭에 꽃밭을 여기저기 만들어 보려고 궁리하고 있다.
그냥 한두 군데 꽃밭을 모양 없이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고 텃밭의 전체적인 모양을 살려서 좀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텃밭의 입구, 농막의 앞쪽과 옆쪽, 농막 뒤편의 돌 축대, 돌 축대 뒤편의 무궁화 울타리 남쪽, 연못 둘레, 비닐하우스 남쪽, 비닐하우스 동쪽 돌 축대 남쪽, 그리고 밭 경계 쥐똥나무 아래 등 꽃밭으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이 무척이나 많다.
넓은 텃밭을 빈곳 하나 없이 모두 작물을 심으면 먹을 것은 넘치겠지만, 텃밭에서 즐길 수도 있는 또 다른 꺼리를 팽개치는 꼴이 되니 심신의 균형과 건강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꽃이 주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안도 괜찮다싶어 꽃밭을 궁리한 것이다.
텃밭에 꽉 찬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원예초보가 느닷없이 꽃씨를 열 가지 넘게 사놓고 보니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패랭이, 구절초, 산국, 쑥부쟁이, 송엽국, 마가렛, 카모마일, 레이디라벤다, 타이바질 등 야생꽃씨와 추위에 강한 허브종류 여럿, 그리고 목화씨앗을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많은 꽃씨를 그냥 꽃밭 만들고 대강 뿌려놓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걸 알고 나니 이거 참 한심하다.
꽃밭도 뭘 알아야 제대로 꾸밀 것 아닐까 해서 원예관련 책들을 이것저것 구해보니 출발순서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야 씨앗 뿌리고 틔우는 방법을 배우고, 꽃밭 만드는 걸 배우고, 텃밭과 어울리는 꽃밭의 배치와 꽃밭의 환경에 알맞은 꽃들을 선별하는 것, 텃밭주인의 취향에 맞는 꽃들을 생각하고 나니 텃밭에 꽃밭 만들기라는 새로운 큰 일거리가 닥쳐왔음을 깨달았다.
* 2L짜리 물통을 잘라 먼지 크기의 꽃씨를 10개 심어 발아되기를 기다린다
* 3주 전에 심어 본 허브 카모마일다이어스
이왕 저질러놓은 일이고 누가 뭐래도 하고 싶은 일이니 어쩌랴!
교과서를 사서 배우고, 꽃씨에 따라 모종 만들기를 시도도 해보고, 걱정도 기대도 번갈아가며 해대니 텃밭의 겨울 땅이 풀리기 전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텃밭을 멋지고 예쁘게 만들어 가며 적절한 노동을 즐기면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텃밭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로 잘 선택한 작업이긴 하지만, 그렇게 즐기기 전에 거쳐야하는 고달픔으로 고생스런 텃밭생활이 마냥 계속되어서는 곤란하다.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쉬엄쉬엄 느긋하게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나이 들어 제멋대로의 농사로 텃밭생활을 즐기겠다고 하면서 도에 넘는 고생까지 하며 고달프게 땅 파고 고를 일이 아니다.
그러니 빨리 꽃밭을 만들겠다고 진땀 흘리지 말고, 게으르게 일하면서 마음 편한 텃밭생활을 느긋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은퇴를 하고나서 텃밭을 하는 건 나이 들어도 헛되이 놀지 않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일이라 선택한 것이다.
뭔가를 만들고, 키우고, 거두어들이는 일은 아무리 놀면서 즐긴다고는 말하지만, 끊임없이 골똘하게 생각하고 맥 빠지지 않게 근육을 움직이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텃밭이 단순히 농산물을 얻는 장소만이 아니라 적절한 노동으로 체력을 유지하면서 눈으로 즐기고, 마음을 닦아 심신이 편해지는 꽃밭이기도 한다면 텃밭생활이 생활의 터전임과 동시에 도량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 내 머리 속은 텃밭, 꽃밭, 농막, 연못, 유실수, 비닐하우스, 작업장, 정자 터, 화덕 등 올 봄부터 어루만질 대상들이 오가느라 무척 바쁘다.
종심 들어 하는 일이 하고 싶은 것이고 보람 있는 일이라면 좀 힘든 일이라 하여 미룰 일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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