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1. 20:22ㆍ돌밭의 뜰
돌풍이 불 것이라고 주의보가 있었다.
아래쪽에 사는 동네사람이 나보고 미루나무 뽑히거나 부러지면 비닐하우스와 농막을 덮칠 수도 있는데 겁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작년에 강풍에 춤을 추는 미루나무를 어찌할까하다가 베어내기는 그렇고(시실 나 혼자 베어내기가 겁도 난다), 멀쩡하게 잘 크고 있는 나무를 죽일 수가 없어 미루나무에 안전장치를 하겠다고 16mm pp로프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작년에 못한 작업을 이번엔 하여야지 하며 로프를 몸에 묶고 미루나무에 올라 10미터쯤 높이에 걸어 와이어클립 3개로 둘레를 묶고 로프 두 줄로 15미터 지점에 고정하였다.
땅에 160센티미터 길이 비계파이프를 박고 고정을 하니 안심이 되었다.
미루나무가 쓰러진다 해도 최소한 농막을 덮치지는 않겠지 하며 바라보니 아무래도 와이어작업을 한 번 더해야 안심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연달아 혼자 작업하기가 힘들어 다음으로 미뤘다.
* 2년 전 봄의 미루니무. 아래쪽 까만 것이 5미터가 넘는 높이의 비닐하우스 지붕
강풍에 흔들리는 미루나무를 바라보면 겁나기보다는 신기할 정도다.
방향이 제멋대로인 돌풍이 엄청 세게 불지 않는 한 부러지거나 뽑히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결에 따라 순응하며 잎들과 가지가 탄력적으로 심술을 부리는 바람을 스쳐 보내는 재주로 미루나무는 몸보신을 잘 하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없는 나무의 지혜에 경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갓 나무일지라도 나무는 자기 주제를 알아 자신의 높이에 알맞게 뿌리를 뻗고 지탱하는 힘을 유지하니 제아무리 강한 태풍이라도 함부로 텃밭의 미루나무를 망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자연적으로 뿌리를 내린 나무는 줄기와 뿌리의 균형을 유지하며 산다고 본다.
그러한 자연의 조건을 갖춘 텃밭의 미루나무는 도시의 길가에 인위적으로 심어지고 자연을 거역하는 방법으로 가지가 잘리거나 뿌리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고문당하면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며 지내는 가로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내깔겨 둘 수는 없어 최소한의 방패막이는 하여야겠다고 로프를 걸며 안전작업을 한 것이다.
미루나무 잎새에 부는 바람으로 인해 들리는 살랑거림과 반들반들하며 반짝이는 싱그러움을 즐기는 일은 언제나 공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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