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4. 18:02ㆍ밭 만들기
내 텃밭은 좀 크다.
아니 좀 큰 정도가 아니라 이른바 농장이라고 할 만한 크기라 할 수 있다.
하긴 엄연히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였으니 좀 창피한 수준이지만 텃밭주인의 직업이 농업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밭을 일구어서 내는 소득이 식구가 먹고 살만한 수준이 아니라 거시기하다.
* 맨 위의 밭
내 텃밭은 하도 큰 돌이 많이 박혀있는 곳이라 그 돌을 캐어내서 밭 경계를 따라 심었었다.
텃밭이 산 아래에 있고 경사가 좀 진 지역이라 맨 위쪽과 맨 아래쪽의 높낮이가 아마도 세 길은 넘을 것이다.
그런 연고로 맨 위의 밭과 두 번째 밭 사이에는 도랑이 있고, 두 번째 밭과 그 아래의 세 번째 밭에도 각기 도랑을 기울기에 맞추어 길게 내었다.
맨 아래의 세 번째 밭은 지목이 답이고, 예전부터 수렁이 있었으며 큰 비가 내리면 토사가 넘쳐 내 텃밭 아래의 남의 논으로 흘러들어 장마가 끝날 때마다 돼지고기를 한 줄씩 끊어다 아래의 논 주인에게 바치기도 하였었다.
12년 전에 텃밭의 큰 돌을 캐내어 경계석을 만들고 흙을 한 길 넘는 깊이로 파서 배수관을 묻어서인지 그 후로는 물이 넘치고 토사가 흐르는 일은 없어졌다.
연못은 예전의 수렁 자리에 만들고 물은 텃밭의 샘터를 이용하여 자연스레 연못으로 유입되게 만든 것이다.
* 최초의 연못
내 텃밭이 높고 그 아래 남의 밭이 있는 관계로 큰비가 내릴 때에는 내 텃밭에서 빗물이 남의 밭으로 흐르지 않게 신경을 쓴다.
통상적으로 흘러넘치는 것은 괜찮겠지만 그 정도가 과하여 아래의 남의 밭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내 텃밭의 작은 밭 사이에는 한 삽 깊이가 넘는 고랑이 있다.
배수와 흙의 유실을 고려하여 텃밭의 모양과 기능을 텃밭주인의 입맛에 맞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텃밭주인이 텃밭을 여러 해 방치했을 때에 내 텃밭의 아래쪽에 사는 이에게 이태동안 빌려준 적이 있었다.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용하겠다기에 무상으로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열댓 개의 작은 밭을 한 개의 밭으로 밀어버리고 들깨를 심었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무얼 심고 멀칭을 하였었는지 까만 비닐이 여기저기 흙속에 박혀서 바닥을 고를 때에 애를 먹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밭 빌려 주어야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말까지 들어 속이 좀 상했었다.
* 고랑에 물을 흘려 물흐름을 보고 깊이를 정한다
지금은 농막 앞쪽의 밭 부터 새로이 여러 개의 작은 밭을 만들어가고 있는 데 텃밭주인 혼자 삽과 쇠스랑으로 작업하고 있어 힘이 좀 든다.
덕분에 매일매일의 운동량이 많아 심신에 많은 도움이 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흙을 파면서 돌을 골라내는 일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운동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면서 근력을 키우는 텃밭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나이에 부지런히 할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로 인한 소득여부와 관계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