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목태 사건

2005. 11. 29. 18:14농사

 

올핸 텃밭에 콩을 여러 가지로 좀 많이(내 기준으로) 심어봤다.

서리태, 메주콩, 강낭콩, 흙태, 쥐눈이콩 등을 여기저기 심어놓고 처음에는 내 딴엔  특별관리 한답시고 잡초도 뽑아주며 적심도 하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 텃밭은 온통 풀 천지가 되어버렸고, 여기 저기 물구덩이로 수초재배나 하여야할 지경이 되었다.

콩들은 잡초에 뒤덮여 어떤 놈이 어느 콩인지 구별이 쉽지도 않았고, 열심이 잡초를 뽑아내고 잘라내고 애를 썼으나 가을에 콩깍지를 만져보니 무지 실망스럽다.

작년엔 서리태가 쥐눈이콩으로 변했는데 올핸 작고 납작한 콩으로 변하여 되게 맛도 없게 생겨 먹었다. 서리가 내리고도 한동안 놔두고 난 후에 콩깍지를 열어봐도 매양 마찬가지다. 막대기나 도리깨질을 할 필요도 없어 내깔겨 두었다. 도저히 상품가치도 없는 놈이니 마누라한테 자랑할 수도 없다. 쥐눈이콩을 제외한 다른 콩들도 마찬가지이다.

다행스럽게도 쥐눈이콩은 의외로 상태가 양호하다.

쥐눈이콩의 잎이 거의 떨어진 후 베어다가 일부는 말라버린 고춧대에 기대어 놓고, 일부는 양지바른 컨박스 앞에 쌓아놓고 말렸다.

일주일 후에 가보니 땅바닥에 콩 천지이다. 비닐멍석 깔아놓고 작대기로 툭툭 치며 콩알을 빼내려 했지만 생각대로 쉽지가 않다. 급한 마음에 콩깍지가 열리지 않은 놈들을 단으로 몇 개 만들고, 두둘겨서 떨어진 놈들과 콩대에서 쉽게 떨어질 것 같은 놈들은 일일이 따서 모았다. 처음엔 재미로 콩깍지를 따 냈는데 몇 시간 후에 내가 무지 밥통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도에 그만둘 수도 없고 하여 손가락과 허리가 아파 에구구구 소리가 날 때를 지나 겨우 일을 마쳤다.

헌데 콩 단과 콩알 박힌 콩깍지를 아파트로 가져오는 실수를 범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집에 가져와서 보니 몇 가마나 되는 콩 반제품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누라는 측은하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콩 대는 아파트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콩깍지는 큰 함지박을 있는 대로 총동원하여 담아놓고 궁리를 하였다.

“요놈들이 마르면 콩깍지가 톡 소리 나며 열려 예쁜 쥐눈이콩이 빤짝거리며 떨어져 나올 것이다. 나중에 살짝 거두어내면 작업 끝!”

허나 며칠을 말리고 밟아대고 했지만 콩 놈들이 쉽게 쫘르르하며 콩깍지에서 탈출을 하지 않는다.

미련한 내 머리를 탓하며 농사를 지어본 분들에게 알아보니 분명 한 건 내가 바보스럽게 콩알을 빼내고 있다는 것이다.

콩은 잘 익고 난 후에 햇볕과 바람에 말려 콩깍지가 터지게 하여야 하고, 덜 터져 콩알이 안 나오는 건 도리깨질을 적절히 하여 터지게 하며. 떨어진 콩과 콩깍지를 바람과 키를 이용하여 분리를 해야 되는데, 지난번에 홍고추 말리는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쥐눈이콩 분리 사건까지 일으키게 되었으니......

어쨌든 매일 콩대 위의 탭댄스, 콩깍지위의 지루박을 여러 날 계속한 결과 이젠 다 되었다 싶어 바람 부는 날을 택하여 함지박과 비닐 포대를 밖으로 날라 아파트 바로 옆 공원 언덕에서 작업을 개시하였다.

콩과 콩깍지를 키에 담아 키질을 하는 데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옛날에 어머니가 키질을 하는 걸 본적이 있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영 이게 아니다. 콩과 콩깍지가 함께 튀어나가고, 키 뒤쪽에서 서로 엉켜 붙고, 떨어진 쥐눈이콩이 아까워 쭈그리고 앉아 줍고 있으려니 지나던 아줌마, 할머니들이 기웃거리며 모여든다. 그리고는 낄낄낄...

안되겠다 싶어 함지박 위로 콩알이 떨어지고 콩깍지는 함지박을 지나 덜어지게 간격을 잡아 위에서 살살 쏟아 내리니 아주 쉽고 재미도 있다.

헤헤...요렇게 쉬운 걸 가지고...

그나 그것도 잠깐의 즐거움. 바람이 뱅뱅 돌고, 안 불고, 제멋대로 이니 이내 콩깍지 가루가 바람에 휩쓸려 온몸에 뿌려댄다. 웬놈의 콩깍지 가루가 그렇게도 많은지.

창피와 고생 끝에 겨우 한말 반 정도 건져냈다.

다음날 빤짝이며 쳐다보는 쥐눈이콩이 예쁘다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찌그러지고 못생긴 놈, 벌레에 파 먹힌 놈, 수수알갱이 같이 작은 놈들이 많이 있고 까만 벌레도 눈에 띤다.

며칠간 저녁때 한 시간씩을 투자하여 선별작업을 하여 상품으로 변신을 시켰다.

최상품 무제초제무비료무농약쥐눈이콩이 찬란한 눈빛을 발하며 쳐다 보고 있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TV방송에 건강식품으로 쥐눈이콩이 소개되는 걸 마누라와 같이 시청을 하였다.

마누라가 거들 떠 보지도 않던 내가 복아 낸 쥐눈이콩이 하루에 한줌씩 없어진다. 고생에 대한 대가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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