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 20:17ㆍ농사
내 텃밭은 매우 추운 곳에 있다.
한 겨울에는 대관령이나 화천지역보다 더 추운 곳이 송학산 아래 내 텃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30일에 된서리가 내렸고, 싱크대에 있는 물과 수세미가 얼었다.
그리 추워서인지 내 텃밭이 있는 동내사람들은 밭의 무우가 영하의 기온에 속이 상하기 전인 10월 말경이나 11월 초엔 대부분 김장을 끝낸다.
* 맛있는 가을상추
내 텃밭의 배추는 게으른 텃밭주인의 잘못으로 겨우 60일 배추인지라 속이 차지를 않고 거의 시퍼런 잎들 만 달려있다.
속이 노란 녀석이 어쩌다 있지만 손자녀석 주먹만 하게 조그맣게 붙어있는 정도이다.
거름도 제대로 안주고, 병충해를 방지하는 농약도 아예 뿌리질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살기는 했다.
벌레가 갉아먹지 않은 잎사귀를 찾을 수 없고, 몇 놈은 깨알보다 작은 진딧물 같은 벌레들이 잔뜩 붙어서 도저히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아 몇 녀석을 버리고 나니 챙긴 놈들이 40여 포기(?)이다.
몰골도 못난 놈들을 그대로 집에 가져가면 지엄하신 부인한테 판잔 만 들을 것 같아서 그 작은 녀석들을 반으로 잘라서 깨끗하게 세척을 했다.
수돗물로 세차게 뿜어내면서 닦으니 벌레들과 벌레들의 똥들은 싹 씻겨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될 일이다.
무우는 동치미용으로 심었으나 그나마 미성년자들이라 대부분이 네 치 내외의 작은 놈들이다.
맛을 보니 내가 길러 맛있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왜 그리 매운지 참!
일거리를 가지고 귀가를 했으니 감기 걸린 아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게된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서 아내가 쳐다보지도 않던 배추와 무우를 부엌 쪽으로 날라다 놓고 소금에 절이자고 제안을 한다.
물론 맛나게 내가 내린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마침 며느리가 손자녀석을 데리고 왔다.
아들내외와 손자녀석이 모두 감기에 걸려 2주가 넘게 우리집에 오지를 못 한지라 오랜만에 보게된 손자녀석은 오로지 내 차지이다.
아직도 코 밑이 헐고 코가 막혀 감기가 다 낫지를 않은 놈이라 틀림없이 나도 감기가 옮았을 꺼다. ㅎ
* 요개 뭘까?
* 에구! 아내가 맛있는 배춧잎을 막 떼어낸다!
* 요놈이 감기로 요새 주접이 들었다
* 그래도 하부지만 보면 즐겁다. ㅎ
저녁때 김치 담는 일이 끝나고 보니 에게! 이것이 맛보기 김치냐?
도저히 김장 정도는 아닐 터이고!
내가 기른 배추라 덜 자라고 벌레 먹어도 버리기 아까워서 다 담갔는데도,
덜 자란 무우라 동치미를 담글 주제도 못하니 달리 쓸 방도가 없어 큼직하게 듬성듬성 썰어 깍두기를 담갔는데도 김치통 하나를 못 채운다!
배추김치, 걷절이, 깍두기 모두 합해야 20킬로나 되겠나? ㅋㅋ
* 걷절이를 한 통 해서..... 라면과 함께 쓱싹!
아내가 힘들게 김치를 담그는 동안 나는 며느리도 같이 일하라고 손자녀석하고 놀고,
손자녀석이 가고 난 뒤에는 지엄하신 부인께서 배춧잎과 무우잎을 삶아서 껍질을 까내며 나물로 먹기 좋게 만드는 동안 푸지게 따온 상추를 마님 분부대로 오랫동안 먹기 위해 신문지로 꼼꼼하게 포장을 여러 개로 만들어 냉장고에 넣으니 자정이 다 되어간다.
이젠, 취미농군은 이래저래, 텃밭이나 집에서나 고달프다. ㅎㅎ
아니, 텃밭에선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하다! ㅎㅎ
올 농사는 농막관련공사에 시간을 거의 뺏겨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김장(?)도 했으니 아주 망친 건 아니겠지!
이제 텃밭농사는 마늘밭을 좀 만드는 게 남았고,
농막공사는 쓰던 침상을 출입구용 데크로 이전했기에, 지난 번 보다는 좀 고급으로 침상을 새로이 만드는 일이 남았다.
그러고 나면 추운 텃밭에서 지낼 일은 없으니 12월부터는 텃밭과 두세 달 떨어져서 지내야한다.
텃밭과 헤어져 있는 동안 텃밭의 구성과 모양내기, 심을 나무들과 작물들을 생각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나이도 나이인지라 텃밭농사를 욕심내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수준에서 지을 예정이다.
농사를 힐링하는 방편으로 만드는 것이 내년의 목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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