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12:37ㆍ마음, 그리고 생각
어머니 기제사 상차림을 코로나시대에 맞추어서 차렸다.
아내와 의논한 것은 식구에 어울리게 상차림을 대폭 줄이자는 것이고, 나이 칠십을 넘기고 바로 상차림을 줄이기로 했는데 아직도 간소하게 하지를 못하였으니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한 대폭 간소하게 상차림을 하자는 것이다.
오래전의 명절과 어르신들의 기일을 맞아 차려지는 상차림은 무슨 엄격한 법도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 다.
명절과 기일을 맞아 모이는 식구들이 기념행사 뒤에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움과 어른신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음복을 하면서 친척간의 유대를 다지기 위한 방편이 제사 상차림으로 나타난 것일 게다.
상차림의 규모는 모이는 친척들과 식솔들의 규모에 따라서 가늠이 되었을 터이다.
게다가 상차림 하는 주인공의 경제력에 관한 과시나 주변에 나눔을 하는 고운 마음이 더해지면 상차림의 가짓수나 규모가 더욱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본다.
지금 세대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많다.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가까운 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극소수일 것으로 생각된다.
문중의 제사도 종중재산이 그럴 듯하게 있어야 유지되고 있으며, 문중재산을 다 까먹은 문중은 자손들이 시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게 요즘의 세상이다.
제사상차림은 지방마다 집안마다 다르고 정답이 없다.
그리고 무슨 음식을 올리고 어떤 음식은 올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정해진 바가 없다.
그런 게 집안에 정해졌다하더라도 그게 무슨 법적이나 윤리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며, 집안에서의 절대적인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사상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야 좋다는 말도 정해진 것도 아니며, 오히려 예전의 배움이 높은 이들은 제사상차림을 허례허식으로 하지 말고 간결하게 소박하게 알맞게 상차림을 하여 낭비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우리 집은 격몽요결 제찬도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상차림을 하여왔는데, 그 방식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둘째 며느리인 아내와 내가 의논하여 1995년부터 우리집안 제사를 우리가 지내도록하자고 결정하고 상차림의 방식과 규모를 정한 데에서 비롯된다.
어제 어머니 기제사를 지내면서 상차림의 규모나 가짓수를 확연하게 줄였다.
식구에 맞게 양을 줄이고, 나이 들어 늙은 우리가 무리하지 않고 알맞게 준비하도록 가짓수를 줄여서 진설하였다.
나물류, 탕류, 과일류, 떡과 한과류를 대폭 줄이니 상에 가득하던 모양이 휑하게 빈 듯하다.
상차림을 도와주던 손자가 "할머니~! 왜 곶감도 없고, 한과도 없지? 그리고~~~나물도 없고, 동그랑땡도 없자나!" 말하면서 상을 여기저기 처다볼 때에는 상차림을 줄이는 것이 죄 짓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차림이 너무 썰렁해 한 번도 올리지 않았던 수박을 하나 올려보았더니 모양이 좀 살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모양 잡아 진설하고 제사를 올리고 음복하고 저녁을 들고나니 섭섭한 마음이 많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이해해주시며 멋쩍은 아들 내외들 등을 토닥여주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왕 내킨 마음에 다음번 제사에서는 상차림을 좀 더 줄여볼까 한다.
그야말로 제사에 참석하는 식구들 한끼 밥 배부르게 먹을 양 만큼으로 더 줄이는 거다.
아내와 며느리들이 하등 부담을 갖지 않고 상차림을 하고 제사 후에 즐거운 식사와 한담을 즐기며 설거지도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내외 죽으면 집안에서 제사지내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겠지만, 자식들이나마 명절과 우리 죽은 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날은 함께 모여서 돈독한 친척임을 확인하면서 밥이라도 같이 즐겁게 먹으면서 인생살이 하길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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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추석은 아내가 그래도 명절인데 좀 더 차리고 다음 설날에 가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손자 녀석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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