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 23. 14:17ㆍ삶의 잡동사니
텃밭 아랫집에는 여든 되신 할머니 혼자 살고계십니다.
작년에 제초농군이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쓸쓸히 홀로 사십니다.
자식들이 이따금 다녀가나 적막강산을 소리 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의복을 항시 수발하시다 낭군이 돌아가시자 어찌 보면 삶의 목표가 상실된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됩니다.
할머니는 나의 그러한 예상과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 더 부지런하게 밭일을 하십니다.
내가 일어나 새벽의 상쾌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벌써 상추나 열무를 한 움큼 씻고 계십니다.
혼자서 사백여 평 되는 텃밭을 가꾸십니다.
그리고 짬짬이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꽃밭을 돌보십니다.
꽃밭이라야 번듯한 모양은 아니나 내가 보기엔 도시의 크고 잘 가꾼 꽃밭보다도 크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계절마다 꽃들이 예쁜 얼굴을 내밀고,허름한 쓰러져가는 듯한 할머니의 집에 붙어있는 작은 공간의 존재가치를 알리려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텃밭의 채소도 꽃으로 변화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할머니도 옛날엔 볼이 불그스레한 처녀시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던, 그리고 큰 꿈을 키웠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리가 꼬부라지고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노동의 가치와 삶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시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어디 고기를 잘 씹으시겠습니까? 유일한 동물성단백질을 공급하는 건 몇 마리 기르는 오골계입니다.
이따금 풀어나 자유를 맛보이는 아량과 여유도 갖고 계십니다.
할머니의 꽃밭이 계속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