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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텃밭일기
1.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게 아니고 여름소나기처럼 내리기도하고 한쪽이 청명하고 한쪽에만 쏟아지기도 한다. 텃밭일이라야 땅콩 수확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어 빈둥거리던 차에 옛 직장친구가 방문을 하였다. 제천에 와서 카페를 열은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봉급쟁이 은행원출신이 제천지역의 카페명소를 만들어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참 대단하다. 그 카페는 제천의림지 부근의 "아브리 에쎄르"인데, 8백여 평 넓은 마당정원을 구비한 저택을 구입하여 로스팅과 제빵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주거를 겸하여 운영하고 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고생을 하는 걸 보고, 카페로 큰돈벌이 하는 것도 아닌 데 놀면서 하는 게 이 나이에 알맞은 인생경영 아닐까라고 쓴 소리를 하였었다. 내 말에 느낌이 있었는지 아니면 거의 ..
2022.10.12 -
참취꽃
작년 초봄 텃밭 연못가 소나무 아래쪽에 나물로 먹을 참취를 이십여 분 심었는데 봄철 이후로 입맛을 돋우는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나서는 한창 더운 8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한 달반이 넘도록 눈길을 끄는 흰 꽃을 줄기차게 피우고 있다. 텃밭의 유별난 존재로서 자리를 화끈하게 잡은 참취가 기특하다. 봄철에 산뜻한 기운이 묻어나는 취나물을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텃밭 양지쪽의 쑥부쟁이무리와 경쟁하듯 연못가 소나무 아래에 커다란 무리를 만들어가며 가을 냄새를 풍겨주니 예쁜 놈으로서 텃밭주인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별히 보살펴 줄 필요도 없으니 굳센 야생화의 기개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텃밭의 가을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기를 바라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찾아가 눈길을 주는 가을 맛이 쏠쏠하다. (22...
2022.10.12 -
어려운 배추농사
올해는 퇴비를 밑거름으로 주고 밭을 잘 고른 다음에 시장에서 산 배추모종 중 튼실한 놈만 골라서 30여개, 그리고 밭에 직파하여 기른 주황색 베타카로틴배추모종 20여개를 정식하였다. 추석 지내고 열흘 후에 텃밭에 오니 배추들이 벌레에 많이 먹혔으나 그런대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올해는 관리 좀 잘하면 김장꺼리로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목초액, 막걸리, 냉장고에 오래전에 넣어두었던 우유를 섞어 만든 날벌레 방지액을 뿌려주었다. 다음날 오후에 둘러보니 배추 세 개가 뽑혔고, 잎이 잘린 배추 다섯 개가 보이는 게 분명 고라니 짓이다. 노루망을 둘러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서늘해진 갈바람을 즐기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는 해가 저물어 노루망 설치하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남쪽의 태풍이 지난 뒤의 제천의 하늘색은 참 파..
2022.09.27 -
가을꽃
갈바람이 불어오는 걸 아마도 텃밭의 꽃들이 텃밭주인보다도 더 빨리 알아차릴 것이다. 공기 좋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온에 풀텃밭 여기저기에 여러 꽃들이 무더기로 피면서 답답했던 세월을 벗어나며 가을의 맛을 만끽하려는 듯하다. 땅콩은 잎의 상태로 보아 알이 꽉 차지 않았을 테니 열흘이상 더 지나야 거둘 때가 되겠고, 고구마는 두 녀석 캐보니 덜 여물어 보름은 더 지나야 되겠으니, 지금은 바쁘게 할 일도 없어 풀밭 시찰을 하면서 예쁜 꽃들을 구경하기 좋은 때다. 눈 호강하느라 무리 진 꽃들과 살짝 숨어있는 꽃들을 찾아보면서 초가을을 가슴속 깊게 마셔본다.
2022.09.26 -
청와대 걷기
친구들과 광화문에서 만나 서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좀 이른 시간이라 경복궁을 반 시간 대강 돌아다니다 청와대로 이어진 통로로 향했다. 굳이 대통령이 머물지 않는 청와대를 볼일이 뭐있냐고 관심을 놓아버린 곳이었으나, 편하게 들어가고 걷기운동을 식전에 더 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라 구경하기로 하였다. 마침 경로관람객수의 제한에 걸리지 않으니 바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관람을 하는 우리또래들 노인들이 제일 많게 보였고 대통령집무실이었던 곳은 오가는 이들이 방해받을 정도로 붐볐다. 청와대개방으로 관람제한구역이 풀린 경복궁과 연계하여 서울중심부중 최고의 숨겨졌던 자연을 함께 구경하는 맛이 산뜻하다. 최고권력의 냄새가 밴 공간은 크게 눈뜨고 살필 일 없이 북한산자락의 녹음을 만끽하였다..
2022.09.17 -
추석에 핀 소심
올 추석에는 난 꽃이 딱 하나 피었다. 두서너 난들이 추석을 맞아 꽃을 피우며 청향을 뿜어내는 것이 정상인데, 올해는 보살핌이 모자라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면 물만 꼬박꼬박 잘 주어서 화아분화를 시키지 못한 것일까? 작은 분에 살고 있는 복륜소심이 꽃을 하나 올렸다. 아담하게 핀 복륜소심이 조용하게 주인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늙어가는 주인이 조용하고, 차분하고, 욕심내려놓고, 모자라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을 하는 듯하다.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