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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사는 법
아내와 나는 남 보기에 살갑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뭐 그렇다 해도 서로 인상 쓰며 원수로 알고 지내는 건 아니고, 아내는 내게 애교를 부릴 줄을 모르고 나는 아내에게 남사스럽게 애정표현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저 무난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만난 지 9년이 지나 결혼을 하였으니 43년 결혼생활을 합하면 52년간을 지내온 터라 눈빛 한 번 보면 척하면 삼천리이며 서로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바 없이 알아차리니 군소리가 필요 없는 것이다. 부부싸움은 거의 하지를 않는데, 그러나 일단 싸우면 내가 이겨야하는 나의 못된 성격으로 아내는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지내왔다. 그걸 내가 잘 알면서도 난 아내를 어루만지는 포용력을 보이지 못하고 아내가 항복 선언을 하고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대차게 버티는 경..
2022.02.06 -
설날 단상
예전 기억으로 열 살 못 미친 나이에는 우리집 형편이 아주 안 좋았지만 그래도 설날이 즐거웠다. 6.25사변 전에 부르주아 급이었던 아버지는 내가 첫돌 좀 지나 공산괴뢰에 의하여 주살되었다. 풍비박산 된 집안의 천방지축어린막내인 나는 고생이란 걸 몰랐기에 설날에 외할아버지의 동생인 둘째외할아버지 집이나 큰아버지집을 찾아서 받는 세뱃돈 몇 푼에 장난감이나 만화책을 사겠다는 마음으로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그러나 나이 좀 들어 열 살이 넘어서는 나는 왜 아버지가 없을까, 우리 집은 왜 가난하고 어머니는 그리 힘들게 고생을 할까, 둘째외할아버지는 읍내의 최고인 엄청난 부자인데 왜 그리 인간 같지 않게 인색할까 등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오늘 같은 까치설날에도 내일인 설날이 기다려지지 않았고..
2022.02.01 -
명품굴비!
굴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굴비는 바닷물고기인 참조기를 해풍에 말린 것으로 짭짤하게 간이 배이고, 장기보존을 위해 말려서 수분을 거의 없앴기 때문에 말랑하고 부드럽기보다는 꾸덕꾸덕하면서 고깃살이 결대로 떨어지는 식감이 아주 깊은 맛을 낸다.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어물이고, 굴비가 크고 말린 상태가 좋을수록 그 값이 천차만별이다. 아침에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랬다. 모 백화점의 설 명절 명품굴비세트가 250만 원이란다! 10마리가 들어 있으니 한 마리에 25만 원꼴이다. 아무리 가공상태가 좋고 크기가 좋아 한 마리당 350g이나 되는 좋은 굴비라 해도 그렇게 비싸다니. 나 자신도 입맛이 까다롭고 좋은 상품을 즐기는 쪽이긴 하지만 유명백화점의 명품선물세트를 보면 기가 막히고 은근히 화까지 난다..
2022.01.25 -
오늘 하루
인왕산 눈길산행후에 덕수궁에서 박수근 작품전을 보다. 1. 친구들과 덕수궁에서 전시되는 박수근화가의 작품을 보기위한 점심모임을 갖는 김에 아예 집에서 일찌감치 출발하여 인왕산을 향했다. 옷차림도 바람막이로 가볍게 하고 등산화도 밑창이 얇은 릿지화를 신고 눈을 흠뻑 맞는 산행을 두 시간 반을 한지라 고생을 조금 하였다. 서울에 눈이 와봐야 몇 센티미터나 오겠냐며 호기를 부린 탓에 하산하는 길에 미끄러지거나 헛디디지 않으려고 애를 더 많이 쓴 것이다. 독립문역에서 인왕산정상을 지난 후에 창의문까지 가려했으나, 그래도 대설주의보라 그런지 휘날리는 눈발로 시야도 가리고 오르내리는 구간에서 애를 먹으니 약속시간을 지키기가 어려워 중간지점인 숲속쉼터를 지나 옥인동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2. 덕수궁현대미술관에서 박수..
2022.01.19 -
손자와 한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자녀석은 한글을 그린다. 글자를 그리는 순서나 방향이 제멋대로다. 글자를 그리면서 쓸 때에 쓰여 진 글자를 보면서 그리지 않고 녀석의 머릿속에 담겨있는 글자를 꺼내어 그려내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다. 엄청난 수효의 글자를 머릿속에 담아놓고 있는 게 신기하다. 글자의 구성과 발음의 원리라는 것을 모르고도 글자를 그리면서 쓰는 것이 예전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글을 깨우치던 방법과 달라 이상하다. 요즘의 어린이들 거의 대부분이 TV나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유치원선생님에게 배우기도 전에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니 반세기쯤 더 지나면 애기가 태어나면서 바로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하다. 웃기는 것은 녀석이 책을 곧잘 읽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책을 읽으라고 ..
2022.01.18 -
사유의 방에 머물다
동서들 부부와의 6인 만남은 주로 미술관, 박물관, 고궁 등을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사태에서 그나마 마음을 놓고 쾌적한 장소를 찾다보니 북적거리는 시내의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는 것보다 사람들이 적게 모이고 볼거리가 많고 유익함이 더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야외의 공간도 아주 훌륭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원길을 한적하게 걸으며 담소를 즐겼고, 불교관련 예술품이 새롭게 전시된 방들을 오가며 넋 빼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처들을 정신없이 바라보니 나 또한 부처들의 마음을 읽은 것과 같은 기분을 가져보았고, 특히 관람객이 드물었던 시간에 들른 사유의 방에서는 이십여 분을 머리를 텅 비우며 고요와 평화로움을 깊게 들여 마시는 충만감을 만끽해보았다. 더불어 국보, 보물로 지정된 아름다운 도..
2021.12.15